쏜애플 EP '동물'
멸종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멸종'
'나는 멸종되지 않은 한 마리의 공룡 같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하루 만에 직선적으로 멜로디와 가사가 나온 곡이다. (??? : 명곡은 코 풀 듯이 나온다) 자신이 멸종 직전의 마지막 남은 개체라 생각하고 곡을 들어보라는 방향성도 제시했는데, 인간은 같은 종에 묶여있지만 개개인으로 보면 세상에 단 하나만 있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다른 개체라고 볼 수도 있다. 세상이 멸망하여 멸종하기 직전 상황에서의 불안과, 그 불안 속에서도 화자가 찾고자 하는 소통, 포괄적으로는 '죽음'이라는 소재로 앨범은 시작한다.
그전에 인면양 아트워크를 이야기해보자면, 성현님 왈 아트워크를 딱 보고 본인을 투영해서 본 것 같다며, 누군가의 악몽 속에서 나를 본다면 혹은 악몽을 꾸면 저런 모습으로 아무도 없는 곳을 헤맬 것 같다고... 사람에게 오래전부터 길들여져 온 동물인 양에 인간의 얼굴을 더해, 나를 길들이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동물이다는 것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사물을 각 부분마다 정면, 측면에서 본 모습을 그리는 방식인 정면성의 원리를 이용했는데, 부자연스러운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지지만 오히려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기 위해 고안된 방식이란다.
결국 '동물'의 본질적인 특징은 우리는 모두 '유한하다'는 것. 불쾌한 대칭인 정면의 얼굴이 화면 너머의 우리를 쳐다보며 유한함을 인식시키는 기괴함&트라우마틱함,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기 때문에 되려 불완전함이 강조되는 앨범아트가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쏜애플 앨범마다 고유의 색이 있는데 이번에는 가장 생명력 넘치는 초록색 계열을 사용하지만서도, 색감 자체는 너무 활기차지 않은 부분에서 동물이 가지는 생명력과 유한함을 모두 드러내는 것 같아 좋다. 나는 앨범아트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귀여운 인면양!
가사 해석
우리 머리 위로 운석이 떨어져
세상은 이미 불타버리고 있는데도
세상이 멸망하려고 하는 상황 = 자신의 유한성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으로, 실제로 우리는 늘 어느 순간 죽음이 다가올지 모르는 머리 위로 운석이 떨어지는 상황 속에 놓여있다. 이렇듯 앨범은 필연적인 유한성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까워져 오네 어떻게든 되겠지
사람들은 모른 척 고기만 뜯고 있네
'고기'는 다른 곡들의 가사 —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 '파리의 왕' — 에서처럼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의 의미로 쓰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동일하게 유한성을 가지는 동물의 고기를 먹으며 자신의 유한성을 채우고자 함으로 볼 수도 있겠다. 결국 모두 자신의 필연적인 유한성을 거부하고 외면하기 위한 행동이다.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짧게 하면, 곧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상황에도 가사처럼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주인공만 허둥지둥 바쁘게 멸종을 일깨우려 노력한다. 쏜애플은 와중에 노래를 부르고, 후반부로 갈수록 더 격정적으로 연주를 하는데, 다른 내용은 몰라도 쏜애플에게 노래가 곧 소통이므로 멸망하는 세상에서도 소통을 외치는 모습이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만약 우리 마지막으로 남으면 어쩌나
그땐 너의 눈을 볼 거야
세상이 멸망해 우리만 남았고, 아마 곧 우리마저도 세상에서 사라질 순간을 가정해 자신의 끝을 느낄 때 '너'를 말한다. '어려운 달'에서 '너의 까만 눈을 들여다보면 뼈저리게 난 혼자라는 기분이 들어'라 했으니 그 눈에서는 내가 비치지 않았다면, '멸종'에서는 너의 눈에 내가 비칠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는 듯 눈을 보겠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나아가게 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너'라는 존재 때문인 것이다.
만약 우리 마지막으로 할 일이 없다면
그땐 둘이서 춤을 출 거야
'춤'도 이전 가사에서는 거짓된 소통 — '너의 무리', '백치' — 에 가까운 표현이었다면, 여기서는 '춤추는 별'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전에 '춤추는 별'이라는 제목의 단독 공연이 있었는데, 니체를 인용하면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춤은 초인의 것으로, 삶의 긍정과 어린아이를 뜻한다.
몇 번쯤 등 뒤를 찔렸던 기억이
마지막이라면 난 조금 슬플 것 같아
두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한데,
1. 약을 건네도 뱉어내던 '낯선 열대'와는 달리 타인과의 날카로운 소통마저 없다면 슬플 것 같다는 화자, 이제는 소통이 필요불가결하다는 것을 안다.
2. 자신이 타인과 소통한 마지막 기억이 나쁜 기억이라면 슬플 것 같다는 화자, 그랬기에 상대방을 밀어내기도 했다.
평소엔 싫어도 오늘은 괜찮아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속삭여 줄래
하지만, 이제는 어찌 되었든 괜찮은 화자는 소통을 바란다.
만약 우리 마지막으로 남으면 어쩌나
그땐 너의 눈을 볼 거야
만약 우리 마지막으로 할 일이 없다면
그땐 둘이서 춤을 출 거야
아 우리들은 누군가의 추억이 되어
영원히 살고 싶다는 꿈을 꾸어보았지
아 우리들은 어딘가의 별들이 되어
영원히 외롭지 않을 것을 다짐했었지
바로 직전 트랙인 '은하'와 '검은 별'의 가사를 생각하면, 떨어진 별이 다 타버리지 않고 버텨 별똥별이 아닌 운석으로 지구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참 재미있다. 별이 되어 영원히 살고 외롭지 않기를 바랐지만, 유한성이 있는 존재이기에 떨어져 내리는데 그것 또한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멸종을 일으킨다. 유한성에 대한 고민의 화두를 낳은 것이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것.
'동물' 전국투어 공연에서 얼굴 모양의 운석이 무대 배경 장치로 있었는데, 공연이 다 끝난 후 그 운석의 눈에서 빛이 계속 나고 있었다. 떨어진 별은 죽은 줄 알았지만, 이 세상에서 끝없이 빛나고 있을 것이라는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이렇게 공연에서 이어지는 비하인드도 있더란다.
우린 아무것도 될 수 없었네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허무함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의 공룡과 같은 외로움을 드러내는 이 가사 때문에 '멸종'은 곡 자체가 가지는 신나는 편곡과는 상관없이 쓸쓸하고도 외로운 노래이다. 많은 변화를 겪어 오며 세상을 긍정하게 되었지만 부조리함이 슬프고도 아픈 가사. 함께 떨어지기를 약속했고, 외롭지 않을 것만 같았던, 우리가 함께 다짐했던 '은하'의 순간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만일 혼자 마지막으로 남으면 어쩌나
그땐 너를 떠올릴 거야
만일 혼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없다면
그때 나는 노래가 될 거야
멸종되기 직전 단 하나의 개체라면, 비유적으로는 누구와도 온전한 소통과 이해가 되지 않는 개개인의 세상 속에서도,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허무함을 앎에도 화자는 너를 떠올리며 소통을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도 비출 수 없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이 오면, 노래 그 자체가 되어 그 기억들을 그대로 담아두겠다고 한다. 흑흑. 오히려 멸종과 끝이라는 가정이기에 솔직하게 자신의 진심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가사로, 자기 구원의 의미였던 노래가 점차 소통의 의미로 변해왔던 시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노래가 되었다는 듯 랄라~를 부른다. 랄라라라 하는 가사는 혼자서 노래하는 '플랑크톤', 함께 노래하는 '베란다'에서 나왔었고, 그리고는 다시 혼자만의 노래가 되어버렸다.
편곡
멸종 샌드위치!! 멸종이라는 곡 사이에 수많은 쏜애플의 곡을 쌓아가다 다시 시작된 '우린 아무것도 될 수 없었네'에서 이 모든 것들을 겪고도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외로움과 허무함이 확 느껴져서 정말 슬픈 편곡 흑흑.
마일드한 인트로를 추가해서 담백하게 예열하며 시작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감상
지금까지의 쏜애플 가사중에 제일 로맨틱한 가사 같다.. 가사가 로맨틱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멸종은 거의 고백 갈기는... 멸종을 처음 들었을 때는 오랜만에 느끼는 쏜애플의 단순하게 신나는 곡!!! 좋아!! 했는데 첫 라이브 영상이 올라왔을 때는 생각보다 쓸쓸하고 슬픈 노래구나 싶었고, 또 공연에서 들었을 때는 방방 뛰게 되는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들게 하는 곡이다. 쏜애플만 있는 라이브 영상은 결국 혼자 남아버린 상황에서 부르는 멸종이라 아프게 들렸다면, 공연에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있기에 같이 춤을 추며 즐거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감상의 차이가 멸종이라는 곡을 완성시키는 것 같다.
1줄 요약 : 유한성의 허무함 속에서도 타인과의 소통을 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