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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쏜애플 앨범 분석 : 오렌지의 시간

쏜애플 정규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오렌지의 시간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오렌지의 시간 (Hour of Orange)


일단 제목은 항상 곡을 관통하기 때문에, 어떤 가사를 해석하든지 제목을 먼저 이해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오렌지의 시간..? 해석할 수 없다.... 그래서 서치를 통해서 찾아봤다.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 원작은 소설이다. 줄거리는 악인인 주인공이 붙잡혀 악인 교화 프로젝트인 루도비코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고, 악한 본성을 기계적으로 억눌리도록 세뇌되면서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폭력에 구역질을 느끼는 사람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여러 일을 겪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주인공은 다시 예전의 악한 본성을 되찾고 '나는 치유되었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은 기계장치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 시계의 태엽처럼 움직이게 되는 오렌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여기서 오렌지는 오랑(사람)의 복수어를 뜻한다. 참고로, '오렌지의 시간'을 'Time of Orange'가 아니라 'Hour of Orange'로 특정한 시간을 나타내는 'Hour'을 사용했는데, 여기서 쏜애플의 '오렌지의 시간'이라는 제목은 이처럼 본성을 박탈당한 개인이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특정한 시간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모티브로 가사를 썼다고 생각하고 본인의 생각을 더해 글을 풀어가보겠다.


가사 해석


어딜 가서 너는 안 오나 사람 냄새가 그리워라
괜히 이가 시려 굳게 입을 닫고 새를 닮은 목소리로 짖던 어떤 날(어~썬날)

사람과의 소통의 결핍으로 인해 이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본성과 의지가 아닌 외부의 무언가 이 무언가는 후의 빨간 피터에서 찾을 수 있다. 로 인해 변해있는 화자이다. '어떤 날'이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영화의 주인공이 자신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 끔찍한 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불특정 '어떤 날'로 현재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앨범의 화자는 항상 쏜애플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떤 원작의 모티브가 있더라도 앞으로는 항상 후자로 해석한다.


손짓하는 그를 따라가 밑도 끝도 없이 내려가
그를 뜯어먹든 그 뼈에 입 맞추든 진실도 없는 축제가 계속되던 밤

'그'를 특정할 수는 없고, 불특정 다수인 타인으로 생각했다. 타인과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본성이 아닌 빈 껍데기로 타인과 소통하며 복종하는 삶을 통해 외적으로는 모두들 거짓되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진실도 없는 축제'라고 표현했다.


머리맡에 만발하는 아지랑이 꽃 그 향기에 흠뻑 취해 잃어버린 길

이러한 축제 사이에서 화자는 분명히 자신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타인의 본질을 보는 것이 사라지고 가벼운 소통 — 후에 서울병에서는 '농담'이라고 칭한다. — 만이 지속되는 관계에서 느껴지는 역겨움에 취해 영화에서 표현되었듯 점점 자유의지와 자신의 본성을 잃어간다. 특히 이 싸비 부분에서는 보컬에 플랜저 효과가 낭낭하게 들어가면서 제대로 취한 느낌 = 자기 자신이 아닌 느낌을 확실히 주고 있다.


한 모금 땀을 마셨다 새빨간 해가 지지 않는다
약하디 약한 몸은 녹아내리고 이글거리는 길은 끝이 없어라

새빨간 해 = 뜨거움 = 아지랑이 (꽃) = 이글거리는 길을 나타내므로, '진실도 없는 축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렴구에서 거의 취한 듯이 보이는 화자와 달리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는 자신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나약한 인간의 의지는 계속 사라진다.

'길'이라는 단어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오는데, '삶' 정도로 간단히 생각하면 될 것 이다. 즉 이글거리는 길은 새빨간 해가 지지 않는, 아지랑이 꽃에 취해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삶이다. 하지만, 늘 이런 뜨거운 해가 타는 길이 부정적으로만 표현되지는 않는데, 고통을 동반하는 나아감의 시도라고 생각한다면 후에 나올 '아지랑이', '한낮'에서의 해석에서 어떤 포인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움큼 너를 삼켰다 새빨간 해가 지지 않는다
수풀에 숨은 입을 벌린 짐승아 나를 물어 줄래

취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서 전의 가사에서는 자신의 땀을 마셨고, 이 가사에서는 너를 삼켰다. 하지만, '나'의 의지를 더해도, '너'를 없애도 아지랑이 꽃에 취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고, 결국 '짐승'이라는 위험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본성과 의지를 되찾고자 하는 화자이다. 이 짐승은 니체의 사상인 인간 정신 3단계 중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사자'를 뜻한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쏜애플의 음악에서도 종종 등장하니 이 낙타-사자-어린아이의 단계는 알아두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머리맡에 만발하는 아지랑이 꽃 그 향기에 흠뻑 취해 잃어버린 길

하지만 다시 거짓된 행복에 취하며 반복.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삶이 왜 지속되고 있는지는 앞으로 등장할 트랙들에서 화자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자는 묵묵히 복종된 삶에 순응하며 사막을 거니는 '낙타'와 같다가도 '사자' 가려 하는 위태로운 본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1집의 쉬운 이해가 가능하다.

 

 

편곡


쏜애플은 또 원곡에서 벗어난 편곡의 재미가 라이브에서 최고를 달리는데, 원래는 혼자 여러 편곡을 유튜브 링크를 통해서 정리했지만 여기서는 공식 영상만 링크를 추가할 것이다.

 

https://youtu.be/EiUXH-Ohqhs

라이브에서 원곡보다 더 많이 하는 편곡 버전. 
매우매우매우매우 좋고, 가사를 제외하고는 곡을 재창조한 수준이다. 인트로의 두 기타가 크로스 되며 연결되는 리프가 곡 전체를 이끌어가다가, 싸비에서는 확 변화를 주면서 기타의 페이저(플랜저) 효과가 가사의 취한 느낌을 극대화한다. 역시 쏜애플 특유의 이게 기타 소리야? 하는 기타 톤을 느낄 수 있다. 편곡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곡들이 특히 몇 곡 있는데, 오렌지의 시간도 그러한 곡들 중 하나이고, 서울병 이후의 곡들과 굉장히 분위기가 잘 맞는 편곡이라 공연에서는 이 편곡을 애용하는 듯하다.


https://youtu.be/4S0KD9XLVlk (48초까지)

빨간 피터 급으로 달리는 편곡 버전이 있는데 이제는 듣기 어렵다. 흑흑.

 

그 외에도 정말 과거에 했던 'Smells Like Teen Spirit'의 인트로처럼 리듬을 쨉쨉했던 약간의 편곡 버전도 있다. 원곡 버전은 정말 가끔씩 들을 수 있는데 세상 제일 신나는 어이! 떼창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개인적인 감상


비유적 표현이 너무 많아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참 어려운 가사였고, 사실 분석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다. 먼 기억 속에서 쏜애플 노래 중에 오시는 스며드는 데 꽤 걸렸다. 공연에서 듣기 어렵지만 라이브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곡이다. 편곡 버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낯을 많이 가렸는데, 편곡 버전도 좋고 원곡 버전도 좋다. 그냥 라이브에서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수풀에 숨은 입을 벌린 짐승아 나를 물어 줄래

1줄 요약 : 가벼운 소통이 지속되는 관계에서 거짓된 행복에 취하며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는 화자의 상태를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