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병

쏜애플 앨범 분석 : 어려운 달

on-the-shore 2023. 12. 30. 16:04

쏜애플 EP '서울병'

어려운 달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어려운 달 (A Diffcult Moon)


전에 빛을 내는 것 중에 '달'은 소통에 관한 희망이라고 잠깐 언급을 했었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달'은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으로 비유되는 '밤'에만 떠오르는 존재로 유일하게 밤을 밝게 비춰줄 수 있지만, '별'이 아니므로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한다. 즉, 누군가의 외로움을 해소해 줄 수 있으면서도 혼자서는 온전하지 못한 존재인 우리와, 지구를 끝없이 돌며 세상이 존재하게 만드는, 어쩔 수 없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소통을 달에 비유해 이야기한다.

'어려운 달'은 개인에게 각자의 세계가 있고 온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에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관한 곡으로, 간단하게 달을 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포멀하지만 소통을 갈망하는 자신과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자신의 분열적 모습을 나타낸다는 해석도 꽤나 재미있다. 이 두 해석을 합쳐 소통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타자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그러한 타자를 혐오하면서 결국 자기혐오로 이어지는 가사라는 생각을 해봤다. 소통의 두려움을 뒤로하고 '어려운 달'에서 화자는 분명하게 소통을 갈망하고 있다.

 

 

가사 해석


그대는 내겐 너무도 어려운 달 내겐 너무도 어려운 달이었어요

우리는 서로 너무도 어려운 달 서로 너무도 어려운 달이었어요

서로의 세계는 다분히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화자에게 타자는 어려운 달일뿐만 아니라, 타자에게도 화자는 어려운 달이다. 하나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닿을 수 없이 떨어져 있지만 주변을 도는 '달'같은 존재가 타인이고, 타인이 보는 나에게도 이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부모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밤이 서러워

지친 짐승처럼 부둥켜안고서 낮을 참았네

가장 친밀한 관계조차 잊어버릴 만큼 소통이 완전히 단절된 화자의 상황으로, 밤의 외로움이 이어진 낮을 외로이 이겨내기 위해 — '한낮'에서처럼 '짐승'을 언급하며 사자인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 자신을 부둥켜안는다.

 

가만히 너의 까만 눈을 들여다보면 뼈저리게 난 혼자라는 기분이 들어

아무렴 너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아 아프게 하지 않는 몸이 필요할 뿐야

그냥 내게 나쁜 짓이라도 해줄래

다시 소통을 되찾고자 타자를 만나는데, 타자는 늘 그랬듯 특정한 사람보다 보편적인 타인들을 말하고 있고, 이러한 타인들은 다분히 소통에 냉소적이다. 감정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눈을 보아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으며, 화자만 온전한 소통을 일방향으로 바라고 있는 상황이 더욱 외로워 차라리 나쁜 짓이라도 해달라고 부탁. 전에는 착한 짓을 해줘도 퉤하고 뱉어내던 화자였는데... 11579...

소통은 필수불가결이기에 타자는 화자와의 소통을 지속하지만 온전한 소통은 전혀 원하고 있지 않고, 현재 화자가 혐오하고 있는 이러한 타인의 모습은 2집에서 나타났던 화자의 행동과 굉장히 유사하다.

 

그대는 내겐 너무도 어려운 달 내겐 너무도 어려운 달이었어요

우리는 서로 너무도 어려운 달 서로 너무도 어려운 달이었어요

너는 말 뿐이야 나는 좀 깨끗해지고 싶어

뱃속이 뜨거워 아, 누군가와 하나가 되고 싶어

'피난'에서는 관계에 대한 서투름으로 인해 누군가를 먹고 도망쳤는데, 지금은 소통의 갈망 때문에 함입을 원한다. '석류의 맛'에서 화자는 함입으로 인해 더럽혀진 상태이므로 '아무리 씻어내도 지워지지를 않아요' 가사 참고  , 거짓된 소통으로 잃어버린 자신의 본질을 되찾고자 다른 타자와 온전히 소통함으로 깨끗해지고 싶다는 말인 듯하다. 하지만 함입과 온전하게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한 끗 차이이니, 결국 계속되는 함입의 연속으로 자신을 잃어갈 뿐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죄도 지어 본 적 없는 눈길로 바닥만 쳐다보는 넌 가엽지도 않아

아무나 나의 적막함을 알아준다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다 줘버릴 거야

차라리 내게 욕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

'죄'는 아마 거짓된 소통으로, 타자는 거짓된 소통을 해보지 않았다는 듯 행동하지만, 타자의 눈을 바라봤던 화자와 달리 화자의 진심이 담긴 눈을 보지 않고 온전한 소통을 피한다. 너무너무 외로운 화자는 자신을 위한 욕조차 해줄 타인도 없는 상황에서 소통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간다.

그리고 짱 좋아하는 기타 솔로~~~~~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너는 나의 살을 만지고 네 얼굴에 뱉어 줄 침조차 나는 좀 아까운걸

네 손은 내 가늘한 목조차 조르지 못하는데 이따위 미지근 한 세상은 사라져 버렸으면

이렇듯 타인들은 화자에게 다가와 거짓된 관계만을 맺는다. 이를 혐오하는 화자는 뱉어줄 침조차 아깝다고, 나에게 어떤 작은 영향도 주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미지근 한 소통이 난무하는 세상에 대한 슬픔이 섞인 환멸을 드러낸다.

 

우린 끝내 서로 너무도 어려운 달 서로 너무도 어려운 달이었어요

아스라이 머리 위에는 어려운 달 해마다 앓았던 여름병 보다

그녀의 짓무른 뇌보다 눈 앞에 숨을 쉬는 네가 싫어

이 구절도 진짜 좋아하는 가사!!! 까마득한 머리 위에 태양처럼 닿을 수 없게 달(타인)이 떠있고, 2집에서 그렇게 앓았던 여름병보다, 이미 죽어 소통할 수 없는 사람보다, 그저 숨을 쉬는 '네'가 싫다고 말한다. 결국 네가 싫다는 그 손가락은 나에게 돌아와 온전한 소통을 시도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회피하는 모습을 가진 '내'가 싫다며 자기혐오를 토로하는 가사일지도 모른다.

 

 

편곡


베이스로 시작하는 인트로를 더해서 연주하는 정도로 편곡적으로 크게 다른 부분은 없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공연한 영상도 있으니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될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


역시 웰메이드 곡이고 서울병이 쏜애플 가사의 정점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계몽도 가사가 좋지만 유독 서울병 앨범이 좋아하는 구절이 많다. 그리고 정말 정말 예쁘게 녹음된 목소리에 비해 쏜애플 노래 중에 가장 싸이키델릭한 사운드라서 참 좋다. 분명 예쁘게 부를 노래는 아닌데 유독 곱상하게 녹음됨. (좋다는 뜻) 그리고 에반게리온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곡이다. (윤성현은 에반게리온을 좋아한다.) 아마도 어려운 달 콘서트 아트워크 만들 때 성현님이 달을 크게 해주세요 더 크게 해주세요라고 하면서 디자이너 분과 옥신각신했다는 게 생각나는데 타인은 그렇게도 큰 존재인갑다 싶었다~

 

눈 앞에 숨을 쉬는 네가 싫어

 

1줄 요약 : 거짓된 타인들의 소통 속에서 온전한 소통을 갈망하는 화자 (근데 이제 자기혐오를 곁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