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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애플 앨범 분석 : 시작

on-the-shore 2023. 9. 18. 22:16

쏜애플 노래를 많이 들었지만 사실 아직도 가사를 정확히 모르는 곡들이 많다. 본인이 가사를 신경 안 쓰고 듣기 때문... 외에도 곡을 한 곡 한 곡 세세히 들으며 각 곡의 주제와 정서, 음악적 요소를 해석 및 분석하고, 각 앨범마다 발전해가는 쏜애플의 모습을 다양한 관점에서 알아보고자 야심차게 도전합니다. 쏜애플의 음악을 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둘 것이고, 개인적인 생각을 중심으로 쏜애플 멤버들의 인터뷰와 멘트, 다양한 사람들의 해석 등을 조합해서 주관적이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적을 예정.

쉽지 않은 장기 프로젝트가 되겠지만 쏜애플 앨범 분석 시작합니다. (21년 7월 29일 시작)

가장 처음으로 이 글에서는 각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와 정서의 발전과정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먼저 정리할 것이다. 레스고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2010.07.17.]

피어나다 - 오렌지의 시간 - 빨간 피터 - 아가미 - 도롱뇽 - 청색증 - 너의 무리 - 플랑크톤 - 이유 - 매미는 비가 와도 운다

 

소통의 결핍에 대한 갈망

 

쏜애플의 첫 정규 1집.

 

결핍 대신 부재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했다가, 1집은 확실히 날 것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결핍'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소통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자신에게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들을 굉장히 솔직하게 표현했고, 화자가 굉장히 불안하고 망가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혐오, 절망, 강한 욕망 등 미성숙하고 위태로운 모습이 이후에 나올 앨범들에 비해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성현님의 이야기로는 그 전에는 작업물을 만든 적이 없으므로 윤성현의 이십몇년을 관통하는 메타적인 것이 녹아있다고 한다.

 

앨범 제목은 '매미는 비가 와도 운다'의 가사인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난 자꾸 말을 더듬고 → 위의 본인이 생각한 앨범의 한 줄 주제와 일맥상통하여 타인과 온전히 소통하지 못하는 화자를 나타내고 있다.

잠드는 법도 잊었네 → 이 앨범의 '플랑크톤' 가사로 '잠'을 유추하자면 '현실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행동'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앨범 내의 화자는 소통의 부재와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앨범이다.

 

 

이상기후 [2014.06.12.]

남극 - 시퍼런 봄 - 피난 - 백치 - 살아있는 너의 밤 - 낯선 열대 - 암실 - 베란다 - 아지랑이 - 물가의 라이온

 

생존을 향한 몸부림

 

4년 후의 정규 2집.

 

1집의 성향이 어느 정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보다 확장된 '살아남기'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고, 희망찬 모습들이 곳곳에 보인다. 희망차다기보다는 삶을 갈구하는 느낌이 더 크기는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름 위로가 되는 말들이 꽤나 있다.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생존'을 외치던 시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던, 치기 어리고 세상에 도전하고 싶었던 가장 뜨거웠던 시기의 곡들이다. 자기소외에 관한 맥락을 많이 담았다고 했으며 1집에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절망이 가득 차 보였다면 2집에서는 계속해서 사람에게 무언가를 갈구하면서 화자가 얻게 되는 외로움이 느껴진다.

 

제목인 '이상기후'는 역시 타이틀인 '낯선 열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외에도 나쁜 날씨에 대한 가사가 종종 나온다. 이상기후 중에 가장 심각한 이상기후는 역시 온도가 계속 높아지는 지구 온난화(열대현상)로, 이것이 계속되는 여름을 유발한다고 생각한다면, — 여름마다 여름병을 그렇게 앓았다고 하는 이야기 — 세계가 나를 알아주지 않기에 나도 세계를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생존을 위한 수단이 나를 구성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구조적인 비극, 이로 인한 무기력 등이 늘어나는 이러한 이상기후 속에서 수긍하며 뜨겁게 생존하는 것이 이 앨범의 중심 소재일 것이다.

 

 

서울병 [2016.05.19.]

한낮 - 석류의 맛 - 어려운 달 - 장마전선 - 서울

 

감정의 병

 

쏜애플의 첫 EP이자 홍동균의 첫 참여 앨범이다.

 

내면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다양한 병기에 대해서 5개의 곡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보다 심화되고 복잡한 정서로 느껴진다.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목마름, 소통의 부재와 단절, 인간의 나약함, 냉소와 죽음 등 그 어떤 것에서도 완전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 앨범으로 넘어가지만, 자신의 욕망에서 시작된 감정의 거센 파도를 보여주는 1집, 그리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2집의 고통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뱉어낸다는 것에서 정서적 발전이 느껴진다. '서울병'이라고 앨범 제목을 정한 이유는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서울에 응축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5곡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 곡 한 곡 구성이 말이 안 되는 수준이고, 쏜애플의 음악적 스펙트럼도 굉장히 넓어지기 시작했다. 1,2집의 적나라하고 날카로운 감정들과 달리 비교적 안정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전 앨범들에 비해서 음악적, 음향적인 완성도가 매우 높아진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계몽 [2019.07.04.]

마술 - 수성의 하루 - 2월 - 로마네스크 -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 - 기린 - 넓은 밤 - 뭍 - 은하 - 검은 별

 

지금, 여기의 불완전한 희망

 

3년 만의 정규 3집.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 앨범이다.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곡을 쓰던 모습에서 —'전혀 여러분을 고려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라는 글 — 자신을 읽어주는 타인을 통해 소통의 갈증을 해소하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 성장하는 모습은 앨범의 정서적인 성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느껴진다. 아직도 살아있음에 대한 불안은 계속되지만 그 불안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있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사무치는 외로움 속에서도 타인과 소통하며 냉소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계몽'에 다양한 뜻이 있지만, 먼저 이 앨범의 영어 표기는 'enlightenment'로 모두가 아는 그 계몽주의가 맞다. 이성을 통해 과거의 무지몽매함에서 탈피해 사람을 일깨우는 사상. 하지만 '계몽'을 타이틀로 선택한 이유는 반대로 이 계몽주의를 계몽하기 위해서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3집 분석 때로 넘기고, 본인은 다음의 해석을 좋아하는데, 해피로봇에서 올린 인스타의 말을 빌리자면 계=한계, 몽=꿈, 즉 꿈의 끝.

1집에서는 현실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잠(꿈)이 사용되었지만, 반면에 이 앨범은 꿈의 끝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꿈속의 이상과 같은 헛된 희망이 아닌 꿈의 끝에서 현실의 불완전한 희망을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함께 찾아가고 있다.

 

 

동물 [2023.08.28.]

멸종 - 할시온 - 살 - 파리의 왕 - 게와 수돗물

필연적인 유한성

 

새로운 장을 여는 4년 만의 2번째 EP 앨범이다.

 

타인에게서 벗어나려 했던 1집에서 시작해 모든 것을 끌어안으며 지금, 여기의 희망을 발명한 쏜애플이 다음에 어떠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을까에 대한 결과물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집까지는 죽음을 제쳐둘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남는 것에 몰두했다면, 여러 변화를 거쳐 언젠가 다가올 끝의 존재를 다시금 인식한다. 자신의 미지근함과 유한성에 의한 불안으로 정체된 시간마저 이 앨범의 서사인 셈이다.

 

검은 별에서 살짝 드러났듯 유한성에 의한 우울과 욕구가 고민의 화두이자 성현님이 언급한 본인이 힘들었던 시기 추측하자면 코로나 시기였던 20~22년경 가 담겨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곡이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가사나 주제적인 측면에서 여타 앨범보다 트랙 간의 유기성이 더욱 강한데, '동물'인 우리가 갖는 필연적인 유한성을 놓고 죽음으로 시작해 동물의 3대 욕구로 일컬어지는 수면욕, 성욕, 식욕을 거쳐 생존을 이야기한다. '너 또한 동물이다'라는 문장으로 유한적인 존재가 가지는 허무함을 인식하게 하지만, 그렇기에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의 욕망에 충실하며 살아가자 외친다.

 

이 정도로 간단한 앨범 서사 정리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쏜애플은 눈 돌리고 싶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한 정서, 그리고 자신들의 진심 그대로만을 드러내는 음악을 들려준다.

다음 글부터는 정규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의 곡 하나하나를 뜯어가면서 분석해보도록 할 것이다.

모두 쏜애플 들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