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쏜애플 앨범 분석 : 도롱뇽

on-the-shore 2023. 9. 28. 22:43

쏜애플 정규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도롱뇽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도롱뇽 (Salamander)


가제는 '두루미도 울고 거북이도 울었다'. (ㅋㅋ) 두루미와 거북이 서로에게 모두 이롭지 못했던 관계를 표현한 것 같다. '아가미'를 잇는 사랑 노래. 도롱뇽은 어릴 때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다가 성체가 되면 아가미가 사라지며, 재생능력이 뛰어나 꼬리를 자르고 도망갈 수 있다. '아가미'에서는 계속해서 타자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아가미가 사라진 '도롱뇽'이 되어 타자와의 소통을 결국에 놓아버리는 모습이 대비되게 드러난다.

 

 

가사 해석


린 서로의 귀 뒤편에 씨앗 하나를 묻고 오랫동안 기다렸지
한숨 눈도 붙이지 않고 창문도 열지 않고 오랫동안 말이 없지

씨앗은 소통의 시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에 가깝게 씨앗을 심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리고 함께 있어도 서로는 온전한 소통을 할 수 없다. 여전히 잠드는 법도 잊어 눈도 못 붙이고 꽉 닫혀있는 화자이다.


너는 자꾸만 손이 베여 새빨간 피 흘리며 어디론가 사라졌지
나는 또다시 너를 찾아 이곳에 데려와선 니 눈물만 핥고 있지

타자는 화자와 소통을 시도하다 상처를 입고,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롱뇽처럼 화자에게서 벗어나려고 한다. 새빨간 피는 '빨간 피터'의 '빨간'과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자신을 잃어버린 화자의 모습이 타자에게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가미'에서 보였듯이 타자에게 집착하던 화자는 타자를 다시 찾아내고, 상호적인 소통이 아닌 '니 눈물만 핥고 있는' 혼자만의 소통으로 욕망을 채우고 있다.


아, 미움의 꽃이 피네 아, 겨울은 끝나지 않네
난 너무 추워 식은 너를 끌어안고 넌 그런 내가 아파서 이내 밀쳐낼 수밖에 없네

귀 뒤에 심은 씨앗은 사랑의 꽃이 아닌 미움의 꽃으로 피어났고, 서로의 관계는 사랑이 아닌 미움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애증)

'겨울'이라는 단어는 쏜애플 가사에서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후에 '2월'에서 제대로 등장한다. — 사계절에 관한 해석은 '시퍼런 봄', '2월'에서 제대로 해보도록 하겠다. 성현님의 트위터에도 '나에게 봄이 있기를 바란다.'라는 말도 있고, 간단히 말하자면 겨울은 외로움, 공허함, 허무함을 나타내는 계절일 것이다. 불안하고 외로운 화자는 타인에게 기대 보지만 가시가 피어난 듯한 화자에게 안겨진 타자는 화자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소통하기를 거부한다.


아, 미움의 꽃이 피네 아, 겨울은 끝나지 않네
난 몸이 달아 마른 니 입술을 먹고 넌 그게 너무 아파서 또다시 날 밀쳐내고

이러한 미움의 관계 속에서 화자는 '아가미'에서처럼 불안감을 나타내며, 타자가 소통하기를 거부해 말라버린 입술을 먹어버렸다. 하지만 타자는 또 거부하기를 반복한다.


널 많이 좋아하지 그만큼 더 미워하지
난 이제 어쩔 수 없이 이곳의 불을 끄네

타자를 사랑하지만 자신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타자를 미워하게 된다. 결국 화자도 이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헤어짐을 준비한다.


나 이제 잘게 나 이제 잘게 내일 아침에 만나
날 깨우지 말아줘 날 깨우지 말아줘

계속 잘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 더 이상 이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부탁과 내일 아침에 만나자는 바람, 즉 아직도 남은 미련과 집착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계속 싸우고 있다. 이제는 그만둬야 하는 것을 알았기에 타의적으로만 가능한 깨우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하고 있고, — 라이브에서는 가끔 마지막에 '부탁해'를 더해서 부른다.  이는 '아가미'에서 타자에게 깨어나지 말라는 집착과는 완전히 반대된다.

고통스러운 욕망이 피어난 화자는 타인을 흉내 내기도, 타인에게 집착하기도 하다가 결국 자신 혼자만 남아버렸다.


편곡


앞은 원곡과 같지만, 뒤는 풀 세션으로 가면서 진성으로 깨우면 죽여버릴 듯이 '날 깨우지 말아줘'를 부르는 초기 버전, '날 깨우지 말아줘' 부분부터 6/8로 바뀌면서 진성으로 부르는 버전, 느려져서 8분이 되어버린 어쿠스틱 버전이 있다. 아마도 공연에서 들을 일은 없을 것 같다...

 

https://youtu.be/M3DnmCFHB6o (21분 35초부터)

원곡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홍동균만의 스타일이 더해져서 조금 더 쏜애플스러워진 도롱뇽이다. 중간에 코드가 살짝 변하는 부분 2절의 '마른 니 입술을 먹고', '그만큼 더 미워하지' 이 좋아하는 포인트이고, '날 깨우지 말아줘' 전의 간주는 라이브에서 더욱 아픈 구석이 있다.

 

https://youtu.be/qSsO9CIUchA

16년도 불구경에서 아마도 처음 선보인 완성된 편곡 버전으로 '물의 기억' 콘서트에서 영상으로 박제되었다. 오예! 아가미 원곡과 느낌이 비슷해서 하나의 도롱뇽-아가미가 완전한 하나의 곡처럼 느껴지는 편곡이고 곡의 완성도도 확 올라가지만, 공연에서 갑자기 '후우린~'하면서 갑자기 도롱뇽이 치고 들어오는 포인트는 원곡에서만 느낄 수 있다. '나 이제 잘게'부터 쭉 진성으로 지르는 부분은 더욱 처절하게 들리고, 오히려 '날 깨우지 말아줘'는 가성으로 불렀다. 이런 차이는 또 '날 깨우지 말아줘'를 진성으로 불렀을 때와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개인적인 감상


항상 도롱뇽은 아가미와 함께 들어야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해석해 보면 아가미-도롱뇽 순서가 분명 맞는데, 곡 자체의 다이나믹 빌드업 때문인지 공연에서는 꼭 도롱뇽-아가미 순서로 한다. 쏜애플의 다른 자극적인 곡들에 비해서 굉장히 적적하고 임팩트가 적은 편이고, 그래서 원곡을 본인은 많이 안 듣는다(미안!!) 대신 공연에서 나오면 좋아 죽음!!

 

나 이제 잘게

1줄 요약 : 결국 사랑하는 그대와 온전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헤어짐을 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