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EP '서울병'
한낮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한낮 (High Noon)
'서울병'은 하나의 대주제 아래 연관성을 가진 정규앨범과 달리 서로가 인접성만을 가지고 하나하나의 닫힌 하프렝쓰 앨범이다. 스토리 자체는 정규 2집에서 바로 정규 3집으로 이어지고, 서울병 앨범은 물을 건너는 화자의 이야기 그 사이를 세세하게 채우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앨범 내의 스토리 성보다는 '내면의 병기'라는 소재로 각 곡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주요한 포인트라는 것이다.
'한낮'은 닿을 수 없는 삶의 의미를 나타내는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있는 시간, 태양에 닿기 위한 삶이자 가장 뜨거운 시간이다. 이상기후의 연장선으로 소통을 찾아 헤매던 화자에서 더 넓어진 '삶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한낮으로 시작한다.
가사 해석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멀리서 울부짖는 시간은
언제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스름 녘
쏜애플은 '어스름 녘'을 공간과 시간의 형태로 나누어 이야기를 하는데 공간 형태는 '마술'에서 자세히 언급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시간 형태로 해가 지고 있는 어둑한 어스름 녘이라는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가 저물어가는 어스름 녘에 물을 건너는 화자가 찾고자 했던 어린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사자의 모습으로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그게 난 무척이나 성가셔 입술을 질끈 감고 말았나
어느덧 한꺼번에 밀려온 한낮의 빚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성가셔 울부짖는 입술을 닫고 어린아이로 나아가려 하는데, 어스름 녘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동안 삶의 의미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한 한낮의 뜨거움이 화자에게 다가왔다. 화자가 바라는 어린아이는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가 아니며 그저 삶 자체를 긍정하고 순간을 살아갈 뿐이지만, 불안은 항상 어린아이로 갈 수 없도록 삶의 의미를 갈망하게 만든다.
뼈 밑에 싹을 틔우네 나의 것이 아니었던 말들이
두 눈을 죄다 태우며 하루종일 바라본 태양
화자의 본질인 뼈에 자신의 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들이, 혹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갈망과 행복 등이 다가와 희망을 새겼고, 더욱 온전한 희망을 원하는 화자는 고통스럽게 삶의 의미를 찾는다. 왜 화자는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2집에서 삶을 긍정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화자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삶을 긍정해도 매일 매 순간 삶은 불안의 연속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을 메꾸기 위해 구멍 난 이유와 의미를 찾아 나서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모든 걸 알게 될 거라 난 믿었었나 어리둥절할 뿐
허우적대다가 건져 온 진심들은 재가 될 뿐
'물가의 라이온'에서 나아갔던 화자는 삶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게 된 것은 없었으며, 물을 건너며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꾸역꾸역 가져온 자신의 진심은 뜨거운 한낮에 타버려 모두 재가 되어버릴 뿐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화자 또한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많은 허무를 느낀 것 같다. 이 '허무'라는 감정은 처음 등장한 것 같은데, 100% 부정적 요소는 아니고 나아갔기 때문에 얻을 수 있던 하나의 발전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잠자릴 함께할 순 있어도 꿈조차 같이 꿀 순 없어라
누구의 탓도 하지 않으며 혼자서 견뎌내는 열두시의 나라
온전한 소통이 어렵다는 비유로, 몸이 가까이 있어도 서로의 생각까지는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 하지만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전과는 달리 탓하지 않고 혼자서 이 12시의 한낮을 외로이 견뎌내고 있다. 왜 삶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소통이 나오냐면, 화자에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삶의 의문과 갈증은 '소통'이므로 삶의 의미에도 소통이 항상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숨을 멈추어 아무 말도 필요하질 않으니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손을 뻗어 쥐어 본 태양
숨을 쉬려고만 했던 — '숨을 쉴래요', '숨을 내쉬며 살아있어' — 화자와 달리 숨을 멈추는 고통을 감내하고서 닿지도 않을 팔을 뻗어서 태양을 쥐어본다. 태야아아앙의 샤우팅에서 악에 받쳐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제일 좋아하는 부분인데 라이브에서는 RIP 돼버림..
완전한 내가 되는 법을 알려줘요 난 계속 물을 뿐
언젠가 목마름이 그치긴 하나요 또 물을 뿐
아무리 쥐어봐도 태양은 닿지 않고 손 틈 사이로 빠져나오며, 결국 정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화자는 그저 이 세상에 질문을 던질 뿐이다. 앞의 같은 멜로디와는 달리 많이 지친 기색의 뉘앙스로 더한 허무를 느끼고 있다.
모든 걸 알게 될 거라 난 믿었었나 어리석어라
어디도 길 따윈 없었는지도 몰라 걸어갈 뿐 한낮을
2집의 시기에는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다는 성현님의 멘트가 생각난다. '물가의 라이온'에서 신이 경고했던 것처럼 이 모든 삶에는 의미와 목적을 온전히 찾을 수 없으며 고통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삶일 것이라는 화자의 결론이다. 이를 긍정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허무 속에서도 해답을 찾으려 뜨거운 길을 걸어간다.
백 년도 살지 못할 몸뚱이 그보다 먼저 썩을 마음들
누구의 탓도 하지 않으며 혼자서 견뎌내는 열두시의 나라
평범한 우리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런 단어의 조합으로 비유했는지.. 너무 쏜애플스러워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절이다. 죽음은 항상 존재하며, 죽어가는 몸보다 더 빨리 식어버리는 열정과 다짐, 그렇게 외로이 한낮을 걸어가는 화자의 모습. 물라와는 조금 다르게 결국 계속해서 나아가며 견뎌야 한다는 회의적인 느낌이 강한 마무리이다. 소통, 행복, 희망, 꿈 그 어떤 것도 화자에게 온전한 답이 되지 못했고, 계속 질문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갈 화자의 고뇌가 담겼다.
편곡
서울병 앨범부터는 원곡 자체의 편곡이 완벽한 편이라서, 인트로 말고는 거의 음원 그대로 라이브 한다. 이 영상과는 조금 다르게 간주의 리프를 따오는 경우도 있지만 비슷한 뉘앙스이다. 굉장히 좋아하는 인트로 중 하나!
개인적인 감상
기타 톤, 라인도 짱짱하고 베이스도 좋고 보컬도 딱 맞는 음역대라고 느껴져서 이게 합쳐진 사운드의 쾌감이 정말 좋아서 쏜애플한테 유독 의미 있는 적폐노래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좋아하는 곡인데 (걍 서울병 앨범을 좋아함) 곡 구성이 알차다 못해 완벽함...... 한낮은 그냥 좋다 더 할 말이 없음 걍 짱임! 근데 라이브를 자주 안해줌!!!!
1줄 요약 : 해답이 없는 삶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갈망하며 뜨거운 한낮을 견디고 나아가는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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