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EP '서울병'
석류의 맛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석류의 맛 (The Taste of Pomegranate)
불교의 '귀자모신 설화'가 모티브인 곡이다. 다른 사람들의 아이를 훔쳐 잡아먹던 귀자모신을 혼내주고자 부처가 귀자모신의 아이를 감추어 해결하고, 덤으로 인육이 먹고 싶어질 때 대신 석류를 먹으라며 훈계를 했다는 이야기를 이용해 본질을 섭식하지 못하며 점점 커지는 허무의 상태와 끝이 없을 것이라는 공포를 표현했다.
현실의 본질과 이상의 허상 또는 소통에 관한 타자 함입 2가지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한데, 석류의 맛 콘서트의 셋리스트가 대부분 소통에 관한 곡인 것으로 유추하면 소통이라는 주제에 더 가까운 듯하다. 깊은 관계를 맺고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면서 온전히 이해하는 소통이 현실의 본질이자 아이(인육), 가벼운 농담과 같은 거짓된 소통이 허상이자 석류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가사 해석
이젠 까마득해요 온전한 당신을 먹은 기억
여긴 날씨가 좋아요 이젠 별로 열도 안 나구요
'이상기후'를 상기하는 듯 그때와는 다르게 날씨가 좋고 — '백치'의 '여긴 날씨가 나빠요' — , 열병으로 인해 아프지도 않으며, 당신을 먹은 기억도 — '피난'의 '입을 크게 벌려서 머리부터 남김없이 삼켰다' — 까마득하다. 화자는 쭉 외로운 상태였다. 1집에서는 소통을 갈망함에도 채워지지 않아 외로웠다면, 2집부터는 온전한 소통을 갈망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고립된 상태에 빠진 것이다.
도망쳐 온 하늘에는 새가 없어요
다다랐던 땅 위에는 그댈 닮은 것이 자라나요
고립된 상태의 화자의 세계는 현실의 하늘이 아니므로 원래 존재해야 하는 새가 없고, 아이 대신 그댈 닮은 석류가 자라나고 있다.
한 알 한 알 떼다가 입에 넣고 혀를 굴려봐요
달아 빠진 듯해도 어딘가 썩은 것만 같아요
온전한 소통을 거부하더라도 항상 화자는 소통을 갈망해왔기 때문에 대체제로 석류를 먹는다. 처음부터 와구와구 먹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한 알 한 알 떼서 천천히 먹어보는데, 석류를 먹는 귀자모신처럼 달달한 거짓을 먹는 것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오도독 오도독 혀를 씹을 만큼 삼켜도 내 안에 똬리 튼 검은 구멍 짙어만 지네
그래도 좀처럼 멈출 수가 없어 난 그래 오늘도 제 발로 기어들어 간 작은 지옥
이제는 거침없이 와구와구 석류를 먹기 시작한다. 여기서 '좀처럼 멈출 수가 없어'가 다시 아이를 먹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있는데, 설화에서는 분명히 '인육=먹지마, 석류=먹어'지만, 이 가사에서는 석류가 오히려 부정적인 거짓을 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석류를 먹고 있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계속해서 석류를 씹어봐도 자신의 본질은 채워지지 않고, 알고 있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어 자신의 세계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낯선 열대'에서 화자가 욕 한 '쓸데없이 건강한 쓸모없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한참을 떨어진 것 같은데 바닥은 어디
마치 천 번쯤 거짓말을 한 것 같은 기분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구멍 속에 빠져 떨어지는 화자. 거짓말을 천 번쯤 하면 무슨 기분일까 생각해 봤는데, 실제 자신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말들만 뱉어대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이 거짓으로 부정되는 기분이지 않을까? 즉, 화자는 거짓된 소통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본질을 끝없이 잃어가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자꾸만 천해지고 거듭되어 거절되고 애꿎은 입가만 붉게 물들어
아무리 씻어내도 지워지지를 않아요 좀 더 무리해서 더럽혀줘요
들어와 줘요 끝을 주세요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거짓된 상황을 다시 떼어내려 노력하다가 또다시 석류를 먹는다. 구멍은 깊어져 가지만 이를 채울 수 있는 것, 끝을 줄 수 있는 것은 '함입' 뿐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 '함입'에 대한 내용은 '피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 함입된 여러 타자들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고 본질을 더럽히면서 점점 잃게 만든다.
'끝을 주세요' 후에 급박해지는 박자는 화자가 미친 듯이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머리가 새까만 짐승의 고기는 먹는 게 아니라 했다
그렇게 사람이 된다면 차라리 난 귀신이고 싶어라
온전한 소통을 피해왔지만 — '머리가 새까만 짐승의 고기는 먹는 게 아니라 했다' = 아이 — 결국 이런 상태는 자신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런 사람이 될 바에는 귀신이 되겠다며 다시 되찾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끝이 없이 떨어지고 있다.
한참을 떨어진 것 같은데 바닥은 어디
마치 천 번쯤 거짓말을 한 것 같은 기분
끝이 없는 끝을 내게 줘
계속 떨어지는 중...... 끝이 없는 끝이 없는 끝이 없다....
온전한 소통과 거짓된 소통 사이에서 이루어진 이 모든 행동들 또한 끝이 없이 반복된다는 '윤회' —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여 재탄생하여 삶을 살아간다는 불교의 교리이다. — 를 표현하기 위해 인트로와 수미상관인 기타리프 아웃트로로 곡이 마무리된다.
편곡
역시 매우 좋아하는 인트로의 인트로가 있다. 공식 영상은 바로 시작하는 무대 밖에 없으므로 유튜브에서 다른 영상들을 더 찾아보면 들을 수 있다. 쏜애플 공연을 시작하면 이 인트로일 것만 같다.. 그리고 석맛 첫 곡.. 멜로디 바리에이션이 다양해서 라이브가 더 좋다. 리듬이 바뀌는 부분에서의 템포 완급 조절도 그 날의 텐션에 따라 다르게 말아준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한 공연도 있다.
개인적인 감상
석맛은 처음 들었던 순간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한 번에 너무 좋아~라고 하기 어려운 쏜애플의 난해한 곡 중 하나인데, 라이브에서 많이 해서 그런지 그냥 스며있었다. 라이브에서 첫 곡으로 많이 쓰는데 후반부에 자리 잡았을 때는 씬나게 뛸 수 있다. 곡이 공연 분위기를 많이 타는 편인 듯. 8분의 길이를 가진 곡이라고 생각이 안 들 정도로 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진짜 웰메이드 곡. 담긴 내용도 알차고 수미상관을 처음 알았을 때 오마이갓 이건 다신 나올 수 없는 최고의 작품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도 이렇게 많이 꾹꾹 담겨 있는 곡은 없는 것 같다.
1줄 요약 : 거짓된 소통으로 인해 본질을 잃어가고 이를 다시 깨닫지만 끝이 없이 반복되는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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