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정규 2집 '이상기후'
백치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백치 (Idiot)
백치는 Boy Meets Girl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 노래로, 1집과 동일하게 2집의 4,5번째 트랙은 사랑에 관한 곡이다. 방송에 나온 곡 설명으로는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만나고 원하고, 미워하고, 결국 밀쳐내게 되어 다시금 '나'라는 외로운 존재로 돌아오게 되는 일련의 매커니즘을 담은 곡이라고 하며, 소통이 가진 절망을 알면서도 갈망을 멈추지 않는 자신을 백치라고 표현했다. '빨간 피터'와 '아가미'의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고, 2집의 원래 타이틀은 백치였다가 앨범 발매 직전에 변경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백치 아다다'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언어장애가 있어 본명이 잊혀가며 마지막에 물에 빠져 죽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정확한 상관관계는 모르겠지만 꽤나 일치하는 바가 있고, 도스토예브스키의 '백치'라는 소설도 이걸 모티브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정도의 느낌은 있다. 하지만 궁예는 궁예일뿐~
가사 해석
가지 말아요 나랑 좀 더 놀아줘요
빨간 해가 쏟아져도 어지러이 춤을 춰줘요
가지말이.. 백치라는 곡의 50퍼센트는 차지하는 첫 소절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에 대한 갈망이 다시 시작되고, 사랑하는 타인이 타자로 설정되어 있기에 특히나 강해진 분리불안적인 성향도 드러난다. 외로운 밤을 다 새고 낮이 되어서도, 삶에 대한 고통이 찾아와도 계속 함께 춤을 춰달라 말한다. 춤은 쏜애플 가사에서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너의 무리의 '날 둘러싸고 이상한 춤을 추는 너의 무리'에서 느낌을 가져오면 되겠다.
밤은 추워요 피를 좀 더 흘려줘요
내게 침을 뱉어줘요 앓고 있는 병을 내게 옮겨주세요
외로운 밤을 이겨낼 수 있도록 타자의 뜨거운 피를 원하고, — 타자는 피를 흘리게 되니 아프겠지만 — 여러 질병들이 옮는 타액으로 타인이 가지고 있는 무거운 감정들마저도 자신에게로 동화시키려는 화자.
그대의 말투라든가 몸짓을 빠짐없이 흉내 내봐요
이로써 나는 한층 가벼워져 편안해져요
'빨간 피터'에서처럼 타인을 흉내 내 자신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텅 비어 가벼운 상태이다. 물에 떠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러다 무심코 뒤돌아 보니 그림자가 없다 무시무시해 악!
이처럼 '피난'과 유사하게 타인을 자신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림자, 즉 자신의 본질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난다. 악!!
구해주세요 여긴 날씨가 나빠요
물이 자꾸 불어나요 누구보다 나를 먼저 건져내 줘요
이상기후로 인해 녹아가는 자신의 세계(남극)에서 나올 수 있도록 타자에게 의지하는 화자.
그대의 버릇과 습관 따위가 나를 점점 옥죄어 와요
숨이 막히니 오늘 밤은 혼자 잠을 잘래요
화자가 타인으로 자신을 채우며 편안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둬버린다고도 말한다. 처음에는 타자의 겉으로만 드러나는 말투와 몸짓을 따라했지만, 자신의 본질이 사라질 정도로 타자를 받아들인 화자는 타자의 숨겨진 버릇과 습관까지도 자신에게 나타나게 되고, 결국 두려움에 타자와의 소통을 멈추고 다시 혼자로 돌아가 외로운 밤을 보낸다. 여기서도 '피난'에서처럼 소통을 바람과 동시에 두려워하는 분열적인 성향이 드러난다.
그러다 무심코 뒤돌아 보니 너는 대체 누구 무시무시해 악!
그렇게 사랑했던 타자도 결국 '너'가 되어버린다.
어차피 이 지구에선 모두 외톨이 "나를 구해줘요" 따윈 모두 헛소리
서로서로 잡아먹는 짐승의 놀이 알면서도 계속하는 나는 멍청이
사랑하는 타자가 남이 되며 혼자가 되어버림을 느낀 화자는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한 절망을 이야기한다. 타인이 자신의 구원처가 될 수 없으며 모든 건 함입을 통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일 뿐이라는 절망적인 생각,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소통에 대한 갈망을 외치는 자신을 백치라 말한다. 모순된 감정의 연속.
여기서 분위기가 확 전환되면서 노래하는 화자와 타자가 전환된다. 갑자기 타자가 화자에게 구해달라고 한다는 해석도 있는데.. 분명 떠내려가던 건 화자인데 갑자기 청자가 구해달라고 하는 게 문맥상 썩 와닿지는 않아서 본인은 이처럼 해석했다.
저기 혼자 네가 떠내려가네 손을 높이 들고 뭐라 말하네
어렴풋 알아들을 순 있지만 난 너를 구해주지 않을래
화자가 느끼는 소통에 대한 갈망과 절망에 대해서 눈치를 채고는 있지만 그걸 온전히 들여다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타자의 말. 타자가 '너'가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사이더라도 당연히 타인은 나를 온전히 구원해 줄 수 없고, 결국 화자가 떠내려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타자를 야속하게 느끼는 화자의 생각이 드러난다. 그래서 실제로 타자가 이렇게 말했다기보다는 화자의 경계적이고 방어적인 성향으로 인해 화자의 마음속에서 느낀 타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기 건너편에 닿은 그대가 몸을 벌벌 떨며 뭐라 말하네
어떤 말을 해도 이제 우린 그저 너와 내가 되어버렸네
떠내려가다 건너편에 닿은 화자는 차가운 혼자로 돌아가면서 소통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말한다. 하지만 화자가 소통을 갈구하던, 두려움에 떠나버리던, 그것과 상관없이 사랑했던 우리는 이미 너와 나로 존재하고 있다.
앨범 아트가 앨범 전체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겠지만, 특히 '백치'에서 모티브를 데려온 느낌이 있어 여기서 이야기를 연관 지어 해보자. '구하다', '물', '건지다', '어둠' 같은 단어를 키워드로 뽑아서 이를 관통하는 이미지로 손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하며, 손은 상대방과 살을 맞닿는 신체 부위 중 가장 보편적이기도 하고, 실제로 물에 빠졌을 때 구해달라고 하면 손을 뻗기도 하니까 이러한 이유로 손을 중심으로 앨범 아트를 구성한 것 같다. 손목에 줄 같은 것이 살짝 희미하게 걸려있는데, 이 줄이 사람과의 소통의 실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희미하게나마 자신이 완전히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 손 밖에 물이 있는 것이 아닌 손안에 물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자신의 세계가 녹아가면서 물이 차오르는 '남극'의 모습까지도 표현한 것 같다.
편곡
베이스와 드럼으로 시작하는 가벼운 인트로가 있었지만 이제는 기타리프로 싸악 시작하는 무지무지 좋은 인트로가 있다. 특히나 백치 이 인트로로 할 때 오프닝곡이면 정말 좋을 듯. 본인은 인트로 없이 멘트하다 말고 갑자기 가지 말아요 냅다 던지는 원곡 버전을 제일 좋아한다. 그 순간 숨이 멎는 느낌!
레전드 백치 어쿠스틱.. 이걸로 들으면 왜 대중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된다. 예쁜 가지말이와 하지만 진성으로 지르는 나는 멍청이~~ 예~~, 꽤나 날카로운 노래가 이렇게 위로가 될 수 있다니 멜로디랑 코드가 부들부들해서 어쿠스틱이랑 정말 잘 어울리는 곡이다.
개인적인 감상
곡의 주제가 너무 명확하다 보니까 가사를 이해하는 데 어려운 노래도 아니고, 해석할 것도 딱히 없다.. 사랑 노래라고 했으니 만나고 사랑하다 헤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서로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표현한 진짜 쏜애플치고 보편적인 주제의 노래인데, 무시무시해 악 때문에 뭐야 이거 하게 되는 느낌. 라이브로 딱 앵콜에서 나왔을 때 짱인 노래인데 앵콜에 나와야만 하는 곡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보니까 생각보다 잘 안 나와줌.
시간이 지나면서 라이브에서는 특히 음원에서 느껴지는 퍼런빛의 날카로움이 많이 가시고 신기하게도 따뜻한 핑크빛 노래로 느껴진다.
1줄 요약 : 사랑하는 타인을 만나고 헤어지며 느낀 근본적인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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