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정규 3집 '계몽'
마술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계몽' 분석을 시작하며
마술에 들어가기 전에 ‘계몽’이라는 타이틀과 컨셉트의 중심인 ‘오컬트’에 대해서 설명하고 시작해 보자! 전의 앨범들은 짧게 대략적인 소개가 가능했는데, 이번에는 하나의 단락이 필요할 정도로 길다. (오히려 좋아)
'계몽주의'라는 철학 관련 이야기라 어렵지만.. 윤성현이 니체를 좋아한다는 공공연한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와 결은 비슷하다. '계몽주의'는 감각과 반대되는 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 인간이 가지는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인 '이성'을 통해 과거의 종교, 전통과 같은 무지몽매함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일깨우는 사상이다. But!! 쏜애플의 ‘계몽’은 이 계몽주의와 완전히 반대된다. 계몽주의를 '계몽'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성현님이 '이러한 계몽주의는 고유의 문화를 죽이고 그들이 말하는 이성만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라 싫어한다. 계몽성이 개인적인 사고의 영역을 만들어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이쪽에 관심이 많아 음악으로 표현이 된 것 같다.'라고 인터뷰했다. 계몽주의는 선민의식에서 비롯하여 개개인을 억압하고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한계를 가진다. 니체도 이와 비슷한 사상을 가지는데, 실재를 부정하는 이성은 초감성적인 가치를 믿지 않게 되면서 목표를 상실하며 삶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하고, 지금 여기의 현실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반이성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오컬트’를 컨셉트로 사용해 이러한 계몽의 부정적인 면, 신비롭고 미신적인 이미지를 표현했다.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와는 다르게 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비이성적이고 미신적인, 초월적인 것에 기대게 되는 현대인과 현대의 자신을 담아 불안과 공포를 형상화하며 불안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계몽주의'를 반박하며 새로운 계몽을 만들어내는 것이 앨범의 주제인 것이다. 앞의 내용들이 인터뷰 피셜이지만, 분석 맨 첫 글에 설명했던 계몽콘 공계의 설명 '불현듯, 꿈의 끝, 갑작스레 불이 켜진 순간 깨어남의 상태로 뜯겨 나온 지점'인 꿈의 한계, 꿈의 끝이라는 해석이 참 마음에 든다. 꿈의 끝에서 현실의 불완전한 희망을 지금 여기서 찾아가는 것이 또 하나의 주제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오컬트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큰 컨셉트는 ‘우주’다. 1집은 자신의 세계에서, 2집은 남극에서 적도까지의 지구에서, 3집은 더 나아가 우주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공간을 통해 정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쏜애플 세계관의 물리적인 확장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요소이다. 레스고 하기 전, 3집은 쏜애플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는 앨범이기 때문에 떡밥 회수가 마구마구 일어나므로 이전 앨범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시작한다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제목 마술 (Witchcraft)
계몽주의를 계몽하는 첫 번째 트랙은 '마술'. 쏜애플의 계몽은 깨달음과 찾아낸 답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 물론 깨달음의 정서가 앨범 전체에 있긴 하지만 — 새로운 고민과 화두를 던지려는 시도이고, '마술'은 그 새로운 희망의 시작점이다.
마술의 영어 제목은 Witchcraft, 고로 Magic의 일반적인 마술이 아닌 오컬트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는 마녀의 마법이다. 보다 부정적이고 악한 면의 의미를 가지며, 이러한 마술의 믿음은 실제로 계몽주의 이후에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앞서 말했듯 계몽주의를 계몽하는 쏜애플은 주문을 외워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불러 희망을 만들어낸다.
가사 해석
여기 밑에 가라앉은 것들을 건져내어 별들을 낳을 테야
까먹은 이름과 열매 맺지 않는 풀 온종일 비가 내리는 하루
2집의 '물가의 라이온'에서 이어져 화자는 물을 건너고 있는 중이며, '별이 빠져 죽은 물가에'라는 가사에서 건너는 물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희망들이 빠져 있다고 했다. 무의미한 소통과 결과를 낳지 못한 일 등등의 가라앉은 희망을 꺼내어 새로운 희망을 만들 것이고, 화자의 의지에 대답하는 듯 비 — 갈증에 대한 욕망 — 는 계속해서 내리며 물이 불어나고 있다.
스쳐간 피부와 저녁에 옮았던 꿈 죄다 녹여서 휘저어야지
기도를 외우자 밤이 커다래지게 새된 목소리로 짖어야지
'옮은 꿈'은 공계 피셜 감정과 생각, 찰나적인 감각들의 상호 전염을 뜻한다. 스쳐간 타인과의 소통에서 발생한 옮은 꿈으로 마술을 부려 희망을 만들어내려는 화자로, 기도를 외우는 굉장히 미신적인 방법으로 계몽주의와는 반대되는 요소를 이용하고 있다. 곡의 주술적인 분위기도, 마라카스를 사용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겠다. 새된 목소리로 짖는 것은 높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이유와 굉장히 유사하며, 노래로써 희망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부른 적 없는 손님은 기어코 문을 열고 들어오고 말 거야
아끼는 옷을 찢고선 나를 매달아 발밑에다 불을 피우겠지
위의 가사는 불을 피우는 타자의 의도에 따른 2가지 해석을 생각했는데,
1)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말하던 전 앨범과는 다른 양상으로 타인은 화자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상호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불구경'의 내용이기 때문에, 불을 피운다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타자가 자신의 옷을 찢어서라도 화자와 동화되려는 것으로, 자신의 곡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얻고 동참해 준다는 감각이 생겼다는 해석이다.
2) 마녀사냥과 연결 지어 노래를 부르는 화자를 악으로 단정 짓는 사람들이 다가와 화자의 옷을 찢고 매달아 화자의 마술을 없애버리려 한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불에 타면서도 화자는 포기하지 않고 음악을 만들어갈 것이며, 오히려 사람들은 타오르는 화자의 불을 구경하며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해석이다. '기어코'라는 단어 때문에 2번이 더 적절한 해석 같다.
어스름이 쌓이네 머리끝이 가려워
뿔이 돋아 나오네 돋아 나오네
'한낮'에서 어스름녘을 시간과 공간의 형태로 나눠 이야기한다 했었고, 여기서는 공간이다. 어스름은 현시된 화자의 내부 심상으로, 어스름이 쌓이면서 어스름녘의 공간이 발생해 내부와 외부 세계의 끊임없는 원환으로 병이 만들어진다. 앞의 가사인 '옮았던 꿈', '불을 피우겠지', '어스름이 쌓이네'를 모으면 서울병 앨범을 발매하고 진행했던 어스름 녘 - 옮는 꿈 – 불구경 병 3연작 공연 제목이다. 즉, 발생하는 내면의 병기를 통해서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며 뿔이 돋아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슴뿔은 잘라내도 계속 자라나 마술계에서 뿔, 특히 사슴뿔은 삶과 죽음의 순환, 마음과 정신의 성장, 의식의 확장 등등을 뜻하고 있으므로, 앨범에서 꽤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뿔'에 대해서는 일단 이 정도로 생각해두면 좋을 것이다. 왜 굳이 사슴뿔이냐라고 한다면 계몽주의와 연관된 프리메이슨에서 악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염소의 뿔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며, 떡밥은 기린에서 회수된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사슴뿔은 겨울에 뿔이 똑 떨어졌다가 봄이 되면 다시 자라는데, '2월'에서 겨울에 머무르며 내게 봄은 없겠지라는 화자의 말과도 연결된다.
여기 밑에 가라앉은 것들을 건져내어 별들을 낳을 테야
비릿한 낱말과 아무라도 좋았던 사람들이 비를 맞는 하루
이미 비에 잔뜩 젖어 비릿한 가사나 소통 등의 말들, 그리고 타인이 비를 맞는 하루에 화자는 희망을 만들어 갈 것이며, 사자의 모습으로 물을 건너는 화자에게 뿔이 돋아 나왔다는 변화가 중요한 트랙이다. 위에서 희망에 대한 목마름이 있듯이, 아래에서도 가라앉은 희망들이 있고, 그 사이에서 화자는 나아가고 있다.
편곡
데모 음원과 원곡 인트로 녹음을 다르게 했는데, 수정 후 버리지 말고 심베가 티저로 쓰자고 해서 공연에서도 사용하는 인트로. 진짜 너무너무너무 좋다.... 라이브에서는 이렇게 연주할 거면서 음원은 플랫하게 만드는 쏜애플의 방향성이 참 좋다.
개인적인 감상
첫 트랙으로 정말 완벽한 곡이다. 어떤 곡보다 공연 첫 곡으로 잘 어울림! 개인적으로 깔끔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음원.드럼 베이스가 라이브로 들었을 때의 쾌감도 있고, 인트로에서 후우우우우우우 하는거만 들으면 저항 없이 신나져서 라이브를 더 좋아한다.
1줄 요약 : 희망을 만들어내려는 화자에게 뿔이 돋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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