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정규 3집 '계몽'
수성의 하루
작곡 : 윤성현, 심재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수성의 하루 (A Day of Mercury)
수성은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88일이 걸려 1년은 짧지만, 자전주기가 58일로 하루는 굉장히 길다. 해 뜨는 날에서 해지는 날까지 무려 176일. 대충 수성은 하루가 무지 길어서 밤낮이 바뀌는 데도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밤낮 온도차도 굉장히 심하고, 태양(삶의 의미)에 가장 가깝기도 해 영향을 많이 받는 행성. 그래서 곡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닐까? (??? : 왜 대곡을 만들려고 해..)
이러한 수성을 이미지화해서 만들어진 노래로, 3집 곡 중 제일 먼저 완성되어서 계몽콘에서 선공개 되었던 3곡 중 한 곡. 온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으로 답에 가까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계몽콘의 멘트와 연관된 가사 같다. 희망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는, 내일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이 너무도 긴 하루면서도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시간. 우리가 공감하기 참 쉬운 노래라 가사도 비교적 이해가 쉽다고 생각된다.
여담으로, 수성의 신 '헤르메스'는 신들의 명령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전령사였다. 자신의 이야기 등 전달할 것이 있는 화자와도 연관되며, 헤르메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인 '헤르메스 트리메기투스'는 '에메랄드 타블렛'이라는 서양 정신문명의 저자인데, 이는 프리메이슨의 기초가 된다.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고,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가 여기서 등장. 오컬트라는 주제를 잡기도 전에 만들어진 곡 같기 때문에 여기까지 생각하고 만들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위그아랑 이렇게 연결되는 게 재미있어서 가져와봤다. 그럼 레스고
가사 해석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매일 밤 차오르는 마음은
아물지 못하는 어제를 끌어안고 썩어버린 채 말이 없네
낮에는 삶의 의미인 태양의 빛을 한껏 받으며 물가의 라이온과 마술에서처럼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갖기도 했지만, 차가운 밤이 오면 온전히 살아가지 못했던 어제를 자책하며 부정적인 쳇바퀴를 돌고 있는 수성의 화자이다.
작아진 발을 보고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한 걸음을 떼자마자 숨이 좀 씨근거려
비뚤게 웃어보고 한참 몸서리치다
아무 대답도 없을 말들을 혼자서 주절거려
작아진 발은 혹시 그림자를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 화자는 그림자가 짧은 낮의 상태로 한낮의 뜨거움을 받으며 망설이며 나아가보지만 숨이 가쁜 화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든 화자는 노래를 하며 자신의 어려움을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또한 계절은 — 수성에는 계절이 없긴 하지만, 수성은 비유고 살아가는 행성은 지구이므로 — 아직도 그림자가 가장 짧은 여름, 혹은 뒤 트랙의 2월과 연결 지으면 그림자가 가장 긴 겨울에서 보다 짧은 봄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끄러지기만 할 텐데 뭐할라고
아직 절반도 안 살았는데
나아가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속에서 머문다. 한 트랙 만에 이렇게 축 처질 일이냐구..
커다란 하늘에 눈가가 시큰거려 만들어낸 다짐은
누군가 지어낸 말이었던 것 마냥 이젠 아무 쓸모가 없네
'아지랑이'의 일화에서 하늘을 보고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나아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지만 금방 사라진다. 여기서 변주가 시작되면서, 가사의 뉘앙스도 살짝 변한다. 전까지는 난 못해.. 였다면 잠깐은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정도의 느낌.
말을 걸어오든 문을 두드리든 목을 숨기고 모르는 체해
미지근해져도 닳아서 헤져도 좋아 무사히 끝낼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화자는 단순히 소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타인을 피해왔다면, 이 가사에서는 사람과의 소통을 넘어 어쩌면 내부에 있는 나 자신에게 본인이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자각하는 것이 두려워 피하는 것 같다. '물가의 라이온'에서 신과 대립하며 떵떵거렸던 자신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모습을 숨기고, 뜨겁게 살고 싶어 했던 2집 화자와는 달리 하루를 마치는 것조차 벅찬 화자이다. 수성의 하루 콘서트에서 기술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 뜨거웠던 그때의 마음과는 달라서 2집 곡들이 부르기가 어렵다고 그랬었지..
들켜버릴까 숨만 죽이는
비겁한 하루를 바랐던가
하지만 화자는 이런 삶을 원한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워어어 떼창 부분은 under the roof 공연에서 관객 떼창을 녹음해서 사용했다.
오래전 놓았던 자그마한 불씨가 어딘가를 태워도
좀처럼 나에겐 옮겨붙지를 않고 그림자만 길어지네
내가 전달했던 진심(음악)이 누군가에게 옮겨졌는데(불구경), 그것이 자신에게는 옮겨붙지 않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외로운 밤이 찾아온다. — 앞의 가사에서는 낮이 배경이었다면 변주가 끝나고 밤으로 넘어오는 구간 —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자신이 하는 음악이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고, 다시 그 사람들이 되돌려주는 마음이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때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을 이어가다 마침내 이 더러운 꿈을 깰 때
그 때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일 거야
참으로 가여운 사람 무엇 하나 삼킨 것이 없네
이렇게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현실을 — '더러운 꿈을 깰 때' — 마주하면, 결국 텅 빈 자신을 — '무엇 하나 삼킨 것이 없네' —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
그저 나 이렇게 숨만 쉬고 살아도 정말 괜찮은 걸까
마치 한 걸음도 떼지 못한 것 마냥 언제나 이 자리에
그래서 아지랑이에서는 차는 숨을 내쉬며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많은 희망을 가졌지만, 이제는 이렇게 숨만 쉬고 살아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어쩌면 긍정적인 발전이 보인다.
무엇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허나 차오르는 마음들
아물지 못하는 오늘을 끌어안고 모든 것은 내일의 몫으로
그렇게 하루를 이어가다 어김없이 맞는 새벽의 한때
첫 가사와 비슷한 형식으로 마무리하는데, 결국 해는 뜨고 마음은 차오르는 석맛에서도 그렇고 무한굴레루프의 뉘앙스가 보이며, 매비운의 가사와도 비슷한 무드의 가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른 네 시에 가려는 매비운, 밤을 새고 맞이해버린 새벽은 같은 시간대지만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결국 삶을 나아가게 하는 낮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넘겨버릴 수도 있으므로..
수성의 하루가 처음 공개됐던 당시와 3집이 나왔던 날 사이에 2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앞 트랙에 배치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 이 시기는 어떠한 의미나 답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면서도 많은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다. 허상 같다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앨범에 슬쩍 체념의 정서가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인 듯.
편곡
인트로 워어어~로 시작하는 편곡을 수하콘에서 처음 들어봤는데 오프닝곡이였음에도 너무너무 신났다. 떼창은 못했지만.. 그리고 뒷부분에서 홍동균이 다르게 치는 라인 또한 라이브의 묘미. 너무너무 좋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한 공연 영상도 있다.
개인적인 감상
처음 들었을 때 신난다! 근데 여기서 뛰는거야 뭐야? 어색하고 박자가 막 바뀌어서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 가사와 다르게 너무너무 신나게 춤출 수 있는 곡이라서 오늘 개망으로 살았지만 알게뭐야 내일의 몫으로 가즈아~~~ 이런 뉘앙스. 가사가 길고 자세히 설명해 주기 때문에 친절하다. 해석해도 가사를 쉽게 풀어주는 정도로 밖에 쓸 수 없어서 오래 걸렸다. 읽는 그대로 아 화자는 그렇구나.. 공감!! 할 수 있는 가사라서 글이 아쉽지만 여기서 놓아주자..
1줄 요약 : 온전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벅차고 어려운 화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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