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정규 3집 '계몽'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
작곡 : 윤성현, 심재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 (As Above So Below)
오컬트에서의 'As Above So Below'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위(대우주)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소우주)에서도, 지구상의 물질은 영적 세계의 작동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위그아콘의 공식 설명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삼키는 형상을 띄어 원형을 이루는 '우로보로스'를 상징으로, 시작이 곧 끝이며, 순환, 영원성, 온전함 등을 표현했다고 한다. 무대를 채우는 위의 공연자(먹는 행위를 하는 뱀), 그 공연을 관람하는 아래의 관객(먹히는 뱀) 간의 하나가 되는 공연의 모습을 시각화했다는데, 이 해석은 곡의 가사보다는 공연의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된 정도 같다.



이러한 '우로보로스'를 찾아보면 영지주의의 상징으로 나온다. 영지주의는 '육체적 존재'를 결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영적 지식'을 온전한 것으로 여기는 사상을 가진다. 영지주의에는 우월한 최고신도 있지만, 물질(육체)을 창조해 악한 또는 불완전한 하위 신 '데미우르고스'도 있다. '데미우르고스'는 비물질적인 힘이 갇힌 물질을 창조했고, 신화에서는 소피아(지혜)에 의해 물질계로 내던져버려진다. 이는 '계몽'의 주제에서 말한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를 계몽시키려는 것과 연결되는데, 영적 지식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 어쩌면 실존주의와 연관되어 — 육체를 중시하며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 앞으로 나아갔던 화자를 포함한 존재들을 '데미우르고스'에 비유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성현님이 얼마나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데미우르고스'는 '사자+뱀'의 형상으로 묘사된다. 화자의 형상 변화인 낙타-사자-어린아이는 쏜애플의 가사에서 중요하고, 이는 쭉 설명해 보겠다.
사실 너무 어렵고 난해해서 위그아는 내 마음대로 막 해석했다. 하하
가사 해석
요란한 믿음이 새어 들어와 예정에도 없는 문을 열었네
길을 나선다 앞에 놓여진 아슬한 외다리
요란한 믿음 = 계몽의 앞 트랙들에서 자기 기원을 찾거나, 어린아이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의문의 희망과 자신감. 그렇게 갑자기 길을 나서기 시작하고, 자신의 고립된 세계에서 벗어나 터널을 빠져나가는 '로마네스크'에서의 모습과 이어진다. 이미지로 생각하면 밑은 어쩌면 후에 이야기할 '물가의 라이온'과 연장선에서의 깊은 물과 같은 바다, 그리고 그 위의 아슬한 외다리. 화자는 위를 걸어가고 있지만, 아래로 떨어진 존재도 있을 것이며, 그럼에도 위를 걷는 화자 또한 '데미우르고스'에 비유되는 불완전하고 무질서한 존재일 것이다.
위를 걸어가네 아래에서는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네
아직까지는 몇 번쯤의 기적이 있을 거라 눈을 감았네
위와 아래의 존재로 노래하는 화자가 중간에 변하는데, 현재 노래하고 있는 화자는 위의 존재이다. '물가의 라이온'에서 사람들이 물을 건너려고 시도했지만 많은 희망이 빠져 죽어있다고 설명했는데, 그 대목이 생각나는 가사다. 물을 건너지 못한 아래의 존재는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고, 멜로디 또한 위와 아래를 도약하며 진행되는 재미재미. 의도한 건지는 모르지만 '물가의 라이온'의 '어린 너는 빠져 죽으리' 멜로디 도약과 매우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아래의 존재를 단순한 타자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물가의 라이온'의 가사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화자 내부의 또 다른 마음이라고 생각을 했다. 삶의 모든 순간이 늘 위에서 나아가는 순간만 있을 수도 없으니, 또 어느 순간에는 아래의 존재가 되어 나아가는 존재를 먹어치우는 사자로 남아있을 수도 있고, 불안한 나아감을 해소하기 위해 차라리 체념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위그아의 순환과도 연관성이 있다.
이제 곧 바람들이 세차게 밀어닥칠 거야
바람은 '남극', '로마네스크'에서 행복을 뜻했지만, 행복에 취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아감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며 위의 존재를 아래로 떨어뜨린다.
떨어지게 두소서 놈의 몸을 우리에게 내어주오
한 점씩 나눠먹으면 더러움이 씻겨져 외로움도 사라져
곡의 분위기가 긴박하게 변하며 노래하는 화자가 아래의 존재로 바뀌고, '물가의 라이온'에서 등장했던 절대자와 같은 신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가사이다. '피난'의 가사와 유사하게 위의 존재의 희망을 뜯어먹으며 나아가지 못한 자신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외로움을 해소하며, 단순하게는 누군가의 실패를 바라며 위안을 삼는 것 아닐까. '데미우르고스'가 사자+뱀의 형상을 한 것을 생각하면 '물가의 라이온(사자)' + '피난(뱀)'의 연결성이 드러나는 가사들이 신기하다.
어쩌나 아직도 숨이 붙었네
배를 바짝 붙이고 엎드려라 우리는 하나같이 너의 왕이니
결국 위의 존재는 떨어진 상황. 아래의 존재들은 위에서 떨어진 존재에게 자신들이 왕이라고 말하는데, 결국 나아가며 굴복해버리기 쉬운 무기력, 불안이 담긴 아래의 존재를 왕으로 표현한 듯하다.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고, 살아있다는 것은 곧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마침내 질려버렸네 남은 뼈들은 저기 개한테 던져줘
먹다 버리는 용도로 위의 존재를 소비하고, 본질로 비유되는 뼈는 소통이 되지 않는 짐승에게 던져줬다. 이러한 상황은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 계속해서 반복되고 이어진다. 위를 건너는 존재 또한 아래의 존재처럼 짐승 같던 본인의 모습을 경험하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물가의 라이온', '기린'에서 나타나는 화자의 형상 변화로 알 수 있는 관계성 때문이다.
어린아이로 가려는 도중 나아가지 못하고 물 밑으로 깊게 침잠되어 버린 사자들 — 어쩌면 내면에서 몇 번이고 무너졌을 화자 본인의 모습들 — 은 '물가의 라이온' 속 화자로 생각되는 위태로운 위의 사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물가의 라이온'에서 바로 이어지는 첫 번째 트랙 '마술'에서 뿔이 돋아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현재 위의 존재는 아래의 사자들과는 달리 뿔이 돋아난 '사자+사슴'의 모습이 화자의 형태이다. 이는 다음 트랙인 '기린'에서 이어진다. 고로, 위의 존재도 아래와 같은 성장을 겪어왔거나, 위와 아래를 반복하며 나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언급했듯 아직 숨이 붙었고,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화자는 계속해서 '검은 별'을 향해 나아간다. 많은 역경을 거쳐 도착할 '계몽'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 많관부!
편곡
앞 부분을 레게 리듬으로 편곡한 것. 처음에 듣고 와우... 진짜 독특하고 오컬트스럽다. 싶었고 바로 리듬 바뀌면서 원곡으로 가는 쾌감이 짱이다! 재현님이 원래 들고온 데모 느낌이 레게풍이어서 그걸 살려본 게 아닐까 추측.
개인적인 감상
심재현과 윤성현의 공동 작곡이 참말로 잘 드러나는 곡. 처음 들었을 때 오.. 이렇게 끝..... 이 아니었네!!!! 이 정도로 심오한 구성과 변주를 가지고 있는 곡은 없었기 때문에 가사도 구성도 참으로 쉽지 않은 곡이지만 늘 그랬듯 쏜애플다운! 특히나 베이스 슬랩 구간이 정말 멋있다.
1줄 요약 : 나아가는 위의 존재와 나아가지 못한 아래의 존재 간의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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