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정규 3집 '계몽'
넓은 밤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넓은 밤 (Nightwalk)
영어 제목이자 가제였던 'Nightwalk(밤 걸음)'라는 주제를 이미지화해서 탄생한 곡이다.
낮이 태양에 닿기 위한 뜨거운 시간이라면, 밤은 소통에 관한 희망인 달이나, 타인들을 칭하는 희미한 별이 보이면서도 어둡고 외로운 시간이다. 시간적인 의미의 밤을 공간으로 바꾸어 하나의 세상을 우주로 본다면, 각각의 세계(별)가 존재하지만 그 사이는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밤이 넓다는 표현도 어찌 생각하면 생소한 표현이다. 즉, 너와 나의 사이에는 오직 '넓은 밤'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외로워하며 곡이 시작된다.
가사 해석
가라앉지 않도록 허우적거리는 우리들
그 꼴이 우스워 이를 다 드러내고서 여물어진 동백
아직도 물을 건너고 있는 모습으로, '물가의 라이온'에서 시작된 물을 건너는 화자의 마지막 트랙이다. 화자는 물을 건너며 자신과 같은 타인들을 만났고, 열심히도 물을 건너는 우리들의 모습이 우습다는 듯 '2월'의 가사처럼 봄은 오지 않고 동백꽃이 피는 겨울이 이어진다.
먹이는 찾지 않아 온종일 마신 까만 공기
별들이 자리를 찾아도 우리는 닿을 수 없고
너와 나 너와 나 너와 나 사이에는 오직 넓은 밤이
지금까지는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던 화자이지만, 더는 짐승처럼 먹이를 찾지 않는다. 이전 트랙인 '기린'과 다음 트랙인 '뭍'과도 연결되어 화자의 형태로써 성장을 보여주는 가사. 대신 외로운 밤공기를 마시며 바라본 넓은 밤에는 많은 별들이 있고, 별들이 자리를 찾아 하나처럼 표현되는 별자리지만 모든 별들은 떨어져 있음을 느낀다. 함께 물을 건너며 동질감을 느낄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온전히 닿을 수 없다는 것을 너와 나 사이에는 넓은 밤이 존재한다고 표현한다.
얼어붙지 않도록 서로를 핥아주는 몸짓
목을 찔러 게워 내봐도 우주는 그저 머리 위에
계속 추운 겨울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서로 살아남기 위해 체온을 나눈다. 무언가를 먹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간단하게 '피난', '석류의 맛' 정도가 떠오르는데, 그때 먹었던 타인과의 거짓된 소통을 뱉어내도 세상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문드러진 시쳇말 먼 곳에서 종이 울고
그대가 날 비추지 않아도 뜯겨져 나오는 꿈들
너와 나 너와 나 너와 나 사이에는 오직 넓은 밤이
서로를 핥아주며 체온을 나누다가도 결국 식어버려 문드러진 시체와 같은 소통이 되어버렸다. 겨울을 버티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위그아의 가사처럼 물에 빠져버렸고, 끝을 뜻하는 종이 울며 타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꿈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화자의 내부에 존재하는 불안, 외로움과 같은 무의식의 감정이 외부로 현시되는 것일 텐데, 지금까지는 그것이 타인에 의해서였다면 이제는 온전히 자신으로 인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앞의 같은 가사에서는 넓은 밤을 외로워했다면 여기에서는 넓은 밤을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한다는 감정의 차이가 느껴진다.
삐삐삐삐- 소리가 넓은 밤 속에서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는 소리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우루루쾅쾅 섞이며 나오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악기들의 합이 넓은 밤을 표현한다.
겁도 없이 새파란 꽃을 따러 어두운 산에 가야지
틀림없이 망가진 걸음으로 두고 온 집에 가야지
꽃은 희망의 상징인데, 그중에 가장 희망적인 새파란 꽃이다. '빨간 피터', '시퍼런 봄'에도 나왔던 파랑의 상징을 생각하면 된다. 특히 앞의 가사에선 겨울꽃인 동백이 피었다면, 이번에는 분명히 다른 희망의 꽃을 따러 갈 것이라는 가사. 넓은 밤 콘서트의 아트워크에서는 파란색 핀쿠션(레우코스페르뭄)이라는 꽃을 이미지로 사용했다. 늘 바다를 헤매던 가사에서 처음으로 '산'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도 포인트라면 포인트이다. 다치고 고통받은 몸이 될 것을 예상하고 망가진 걸음으로 돌아갈 곳은 자신의 본질적인 지점, '서울'에서 떠나온 집이다.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안정감을 채워주는 집을 떠나야만 하고, 집에서 멀어지고 이지러진 '기린'의 가사와는 다르게 화자는 희망을 찾아 다시 자신의 본질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넓은 밤이 단순 소통에 관한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치고는 공연마다 매번 하는 곡이고 2월은하검별만큼 자주 했던 곡이라서 이 곡에 큰 중점을 두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뭍에 닿기 전 큰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곡이다. 지금까지 쏜애플의 가사에서 낮에는 치열하게 나아갔다면, 밤에는 타인과의 소통을 바라며 고립되곤 했다. 1,2집에서 소통과 타인에 관해 서툴렀던 모습에서 성장하여 (물론 체념의 정서가 느껴지긴 하지만) 이제는 넓은 밤을 받아들이며 나아가려고 한다. 자신의 세계인 남극에서 시작해, 화자가 끝없이 헤엄치던 여행의 마침표에 가까워지고 있다.
편곡
크게 달라지는 편곡은 없지만, 악기의 연주만 나오는 부분에서 그 어지러움은 음원의 10배 이상이다. 무슨 멜로디가 얽히고 설키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형체의 소리로 넓은 밤이라는 공간을 채운다.
개인적인 감상
넓은 밤은 로마네스크, 수성의 하루처럼 계몽콘 때 선공개 된 곡이지만 친해지는 데 많이... 오래 걸렸다. 정말 좋았던 기억은 석맛절콘에서였다. 천장에 가려진 것 없이 밤하늘 밑에서 듣게 된 넓은 밤이 참 좋았는데, 그때 이후로 한동안 넓은 밤을 정말 많이 들었다.

1줄 요약 : 세상의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희망을 찾을 것을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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