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정규 3집 '계몽'
뭍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뭍 (Shore)
물에서 끊임없이 헤엄치던 사자가 드디어 뭍에 닿았다.
'백치'에서 앨범 아트워크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3집은 이 '뭍'이 가장 연관성이 짙은 것 같아 여기서 아트워크 이야기를 해보자. '마술', '기린'의 가사처럼 사람의 형상에 큰 뿔이 돋아나 있고, '2월'의 겨울을 뜻하듯 잎이 거의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뿔 주변에 있으며, 자신이 건너온 물을 바라보는 '뭍'에서의 화자를 보여주고 있다. 아트워크를 작업하신 분에 의하면 영화 '더 위치(The Witch)'에서 영감을 받았고, 사람인지 조류인지, 앞모습인지 뒷모습인지 모를 모호한 피사체로 표현했다고 한다.
가사 해석
어느새 밀려와 닿은 바닷가
머리를 말려도 기어오르는 물의 기억
한 발을 들고서 몸을 기울여
귀를 털어내도 멈추어지지 않는 파도
앞의 트랙들에서 겪은 변화와 성장을 거쳐 도달하려 했던 어린아이도 원래의 사자도 아닌 뿔이 돋아난 새로운 형태로 뭍에 닿게 되었다. '한낮'에서 아이는 태어나지도 않고 사자의 모습으로 울부짖고 있었는데, 한 발을 들고 몸을 기울여 귀를 털어낸다든지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아서는 불완전하지만 사람의 형태가 된 듯하다. 하지만 몸의 물을 털어내 봐도 화자가 사자였을 때 물의 기억이 자신을 부른다.
너를 부르리 처음의 마음으로
오늘 세계가 막 시작된 것처럼
물살이 빠르다
물을 극복하고 헤엄쳐 나오면 물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아직도 물살은 잠잠해지지 않고 처음 발을 내디뎠던 2집의 그때처럼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처음 소통의 창구를 찾았던 '이유', 노래를 처음 불렀던 마음을 생각하며 나아가려 한다. 가사가 끝난 후에는 '기어오르는 물의 기억', '오늘 세계가 막 시작된 것처럼' 가사 백마스킹이 사용되었다. 여담으로, 2분 27초 경부터 나오는 샘플의 이름은 뇌를 조물거리는 소리라고..
뭍에 오른 지금 다시 물에 뛰어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나아가고는 있지만 체념의 정서가 조금씩 엿보이는 3집이다. 나이가 들면서 20대의 뜨거운 마음은 점점 미지근해져 가고, 뜨거웠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가사를 역재생하는 백마스킹 또한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느낀다. 자신의 치열했던 모습이 담겨있는 바다에 복합적인 감정이 남아있을 것이고, 화자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지금까지 물에서의 이야기를 마칠 준비와 동시에 새로운 길을 나설 채비를 한다.
편곡
뭍은 라이브공연마다 느낌이 다르다. 바이올린 활로 대서사시를 만들 때도 있었고, 정말 깔끔하고 간단하다 느낄 때도 있었고, 그 중간 어디쯤도 있고.. 신스 소리를 라이브로 최대한 구현하고, 어느 정도 틀만 유지하며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곡이라 라이브의 매력이 유독 있다. 보컬 루프스테이션을 사용해서 목소리를 쌓으며 진행하는데, 곡이 나오고 공연 초기에는 기계가 말을 안 들어서 부수고 싶다고도 했었는데.. 이제는 잘 씁니다.
개인적인 감상
쏜애플 네 명 다 라디오헤드를 참 좋아하고, 특히 윤성현은 톰요크 팬이라는 걸 알지만 듣자마자 라디오헤드가 생각나는 곡은 뭍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쏜애플이 발매한 곡 중에 가장 생소한 구성이기도 하고, 음악적으로 한층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곡이니만큼 라이브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이감도 참 다양하다. 곡은 다 썼고 백마스킹까지 다 했는데 가사가 안 나와서 마시안 해변에서 밤을 새웠었다고 하니 성지순례를 가보도록 하자.
1줄 요약 : 뿔이 돋아난 형상으로 뭍에 닿은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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