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정규 3집 '계몽'
검은 별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검은 별 (Black Star)
꺼지지 않은 꿈이 검은 별이 된다. '은하'에서 별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검은 별'이다. 검은 별이 무엇인지 서두부터 밝히기보다는 가사를 따라가며 찬찬히 알아가 보도록 하자.
만약 자신이 곡을 더 이상 쓸 수 없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당시 이 곡이 마지막이면 어떨까, 하고 밴드의 형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결론을 도출해 내고자 한 곡이라고 한다. 정규 1,2집의 마지막 트랙은 다음으로 나아가는 내용의 곡으로 구성되었지만, '검은 별'은 이 앨범을 관통하며 완전한 마무리를 짓는다. 실제로 이 곡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곡을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한 번 들었다고.. 애착이 많이 가는 노래일 수밖에 없겠다. 쏜애플의 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으러 가보도록 하자.
가사 해석
누군가 불을 켠다 어두워진 저 위에서
나의 더러운 꿈을 엿보네
어두워진 저 위에서 켜진 불은 타인을 뜻하는 별이거나, 혹은 세상에 태어남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은하'에서 주변에 존재하는 타인을 깨달은 것을 넘어 화자의 뜯겨져 나오는 꿈을 — 이상, 혹은 불안과 외로움 등 무의식의 감정 —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시작한다.
움직일 수가 없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침묵은 사막을 만드네
화자에게 나아감이란 늘 어려웠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 소통을 나누는 것이 어려워 침묵하기도 했고, 이는 물을 건너기 전 '낙타'의 형태일 때 마음처럼 삶에 복종하고 견디는 것조차 벅차게 만든다.
아, 이 몸은 영원히 잃어만 가는데
날 들여다보는 저 검은 별
그 이유는 유한성 때문이다. 인간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는 필연을 가지며,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기에 영원히 잃어만 간다. 그럼에도 화자를 들여다보는 검은 별이 있다. 화자가 바라보던 타자를 뜻하는 '별'에서 날 들여다보는 '검은 별'이라는 더욱 자세한 명칭이다.
'검은 별' 콘서트의 아트워크에는 블랙홀 안에 신생아와 해골이 존재한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강한 중력을 가진 천체로, 별은 아니지만 수많은 별(희망)을 빨아들인다. 별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고 생성과 소멸을 거치며, 블랙홀은 특히나 거대한 별이 수명이 다할 때 생기므로 죽음과 함께 탄생하는 것이다. 즉, '검은 별'은 연장선상에 있는 생과 사, 어쩌면 유한성을 두려워하는 화자에게 아직까지는 죽음으로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최고의 기타리프 구간!
목소리를 갖지 못한 오래된 녀석에게
이름 몇 개를 빌려줬다가
아무것도 되돌려 받지 못하는 하루
가사의 비유를 풀어서 이야기해 보자면, 곡으로써 표현되지 못하고 남아있던 오래 전의 감정을 꺼내보지만, 아무것도 되돌려 받지 못한다. 후에 언급될 인터뷰에서 '곡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러므로 오래전의 감정은 — 뜨겁고 치열하게 물에서 헤엄치던 마음 등 — 내부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다. 영원한 마음은 없다.
모든 게 시작된 날부터
아이들을 차례대로 삼켜버린 아버지가
나를 찾고 계시네
여기서 나오는 아버지는 '크로노스'이다. 크로노스가 신들의 왕이 된 날부터 권좌를 지키기 위해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삼켜버렸고, 막내아들인 제우스가 반란을 일으키고 먹은 것을 토하게 하는 약을 먹여 동생을 구하고 크로노스는 감금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신화의 크로노스와 동명이인인 시간의 신 크로노스도 있는데, 다른 신이지만 혼동되어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그래서 농경의 신인 크로노스의 상징인 낫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되는 존재의 유한성을 상징하는 등, 시간에게 잡아먹히는 제우스는 결국 시간을 극복해 낸 것이다.
간단하게,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므로 화자가 태어난 그날부터 크로노스가 아이들을 찾듯이 시간이 자신을 계속 쫓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 이 몸은 영원을 셀 수가 없는데
날 내려다보는 저 검은 별
1절에 이어 자신의 희망을 만드는 과정에서 계속되는 어려움과,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고민을 다시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도 검은 별은 화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대는 내게 눈을 주었다 어디에나 있었다 그래
나의 끝에서 꺼지지 않고 빛나는 검은 별
'검은 별'의 정체가 무엇일까, 검은 별의 해석을 도울 여러 가지 자료를 준비했다.
1) 쏜애플 가사에서 빛을 내는 것은 희망을 의미하고, '별'은 그 중 타인과 관련된 희망으로 해석된다. '베란다'의 ('비어버린 별자리에다 기도를 올려도') 자신의 것이 아닌 희망, '물가의 라이온'의 ('별이 빠져 죽은 물가에') 물을 건너려고 시도한 사람들의 빠져있는 희망, '은하'의 ('그댄 나의 별이 되어 날 이끌어줘요') 타인이 자신의 희망이 되어 이끌어줄 수 있다는 생각 등등.
2) 위에서 서술했듯이 '검은 별' 콘서트 아트워크의 블랙홀은 생과 사를 뜻하고 있다.
3) 데이비드 보위의 'Blackstar'와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도 했는데, — 멤버들이 계몽 작업 기간 중 많이 들었던 플레이리스트 중 한 곡이 데이비드 보위의 'Blackstar'이다. — 여기서는 다가오는 죽음을 상징한다.
4) '기린' 분석에서 언급했던 인터뷰를 다시 빌려보자. '예전에는 곡을 쓸 때의 영감이 나를 찾아온다고 생각했는데, 써왔던 노래들은 내 안에 존재했고 단지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화자가 찾아 헤매던 기린(희망)의 정체는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5) 윤성현의 이름, 분명 검을 현에 별 성 자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모두가 윤벼련이라고 말하는.. 우리에게만이라도 윤성현은 검은 별이다. '검은 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도 했고, 그렇기에 본인을 지칭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생과 사, 자신과 삶은 어느 하나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모두 연장선상에서 연결되어 있고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검은 별은 어디에나 있다.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1,2절에서는 검은 별을 두려워하지만, 그것이 꺼지지 않고 빛나는 자신의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스스로 빛나는 별인 타인이 자신을 이끄는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은하'를 넘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내 안에 이미 존재했던, 내부에 잉태해있던 희망을 발견한다. 밝게 빛나지 않고 어두워 희망인 줄 알지 못했던, 하지만 항상 존재하고 있던 검은 별이다.
난 잠시 그대를 가득 흘려 넣고 아득해져
잠시 난 모든 것을 잊어
즉,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품지 않고 나를 희망이라 믿으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의 수많은 불안과 고통을 잊어본다.
언제도 없고 어디도 없는
지금, 여기 난 모든 것을 끌어안네
'검은 별'이 왜 계몽 앨범을 관통하는 곡이냐, 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검은 별인 자신이 곧 희망이었다는 것도 큰 포인트지만, '지금, 여기'의 현재를 이야기하는 것이 그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서 생각날 수밖에 없는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해 매우 간단히 설명하자면, 삶은 동일한 순간이 동일한 순서로 무한히 반복되므로 더욱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무주의로 가득 찰 수 있는 영원히 반복되는 세계, 혹은 영원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신과 삶을 긍정하며,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와는 다르게 비합리적이게 감각하고 더욱이 불안해하며 나아간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을 가지며 타인과 외부적인 것에 욕심을 품고 이에 따른 고통을 이야기하던 1집,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것을 외치며 — 지금, 여기라는 가사는 '검은 별' 외에 '아지랑이'에서만 나온다. — 생존만을 생각하기도 어려웠던 2집을 넘어 이제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블랙홀 표면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다. 그곳에는 지금, 여기 이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신이 희망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에 나를,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화자는 지금, 여기의 불완전한 희망을 발견했고, 과거와 미래의 불안을 잊고 지금, 여기를 살아가본다.
편곡
검은 별은 워낙 기타의 레이어도 많이 쌓여있고, 전자드럼에 신스 사운드도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를 라이브로 온전히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라이브는 라이브의 또 다른 매력. 진성으로 검은 별을 외치는 것, '빛나는 검은 별' 다음 빵요의 드럼스틱 치기, 심홍의 코러스가 포인트이다.
개인적인 감상
정말 아름다운 곡이야 ㅠㅠ. 가사 사운드 구성 코드 멜로디 모든 것이 이 '검은 별'을 위해 태어난 것 같다. 하하.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난 모든 것을 끌어'안'네 에서 뒤집어지는 날카로운 목소리와 미친 듯이 레이어 된 기타와 신스 소리들.. 처음 검은 별 분석의 틀을 잡을 때, 쏜애플이 지금까지 이야기 해온 퍼져있던 모든 내용들이 하나로 모이는 듯한, 마치 하나의 잘 짜여진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결말을 보는 듯한 기분에 충격을 많이 받았더랬다. 많은 성장에 벅찬 감동과 여운이 길다... 처음 발매된 날에도 이 곡은 미쳤다. 도랐다. 했던 게 기억나네..
1줄 요약 : 자신 내부의 희망을 깨닫고 지금, 여기의 모든 것을 긍정함
'계몽' 분석을 마치며
길고 길었던 3집의 스토리를 정리해 보자. 희망을 찾아 나선 화자에게 뿔이 돋아났고, 물을 건너며 하루를 온전히 보내지 못하거나, 자기혐오에 빠지거나, 체념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근원적인 외로움을 받아들이면서 사자에서 다른 형상으로 뭍에 오르게 된다. 타인과의 맞닿음으로 희망을,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기보다는 모든 것을 끌어안으며 지금, 여기의 불완전한 희망을 발견한다. 화자가 나아가고자 한 어린아이는 되지 못한 것 같지만 일단은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본다.
음악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정말 많은 발전과 성장이 느껴져서 놀랐던 앨범이다. 쏜애플 앨범에 신스가.. 꽤나 많은 화음과 코러스가.. 이렇게 따뜻한 곡이.. 별다른 말 할 것 없이 완성도 높은 명반이다. 계몽콘에서'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고 이제 허상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큰 의미를 바라왔던 것 같은데 잠시 접어두고 하루하루 온전하게 살아가다 보면 답에 근접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체념의 정서가 드러나는 듯싶지만 허무를 조금은 이겨내지 않았나 싶다.
각각의 곡이지만 발매된 모든 쏜애플 곡 간의 유기성을 따져가며 해석해야 하니 진실로 쉽지 않았다. 작사자가 유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쏜애플의 음악은 한 사람의 삶을 이어서 풀어내고 있는 것이기에 그래야만 했다. 본인은 감각적으로 좋다고 생각한 표현들을 가사에 사용한다고는 했지만, 단어의 상징과 의미는 늘 일정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1집을 해석하려면 미리 3집까지의 모든 내용과 단어도 알아야 했다. (여건이 된다면 가사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단어의 의미만 정리한 글도 작성해 보도록 하겠다.) 글에는 솜씨가 없어서 머리를 쥐어뜯은 수많은 고뇌가 느껴질지는 모르겠다. 뭐 어찌 되었건 조금이라도 쏜애플 음악에 가까워진 것 같아 만족한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줘에서 모든 것을 끌어안을 때까지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앞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기를, 검은 별을 넘어서 더욱이 밝게 빛나기를, 쏜애플 멤버들과 우리 모두가 더욱 극복하고, 더욱 행복하기를 바란다! 우리 존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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