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정규 3집 '계몽'
은하
작곡 : 윤성현 / 작사 : 윤성현
제목 은하 (Galaxy)
은하는 우리의 태양계를 포함한 수많은 별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천체이다. '한낮'의 삶의 의미를 뜻하는 뜨거운 태양, '어려운 달'의 소통에 관한 희망을 뜻하는 달, 그리고 '은하'의 별, 즉 빛(희망)을 내는 것들이 뭉쳐있다.
지금까지 가사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던 단어들이 쌓이고 쌓여 더욱 아름다운 가사이니, 이전의 분석글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쏜애플 세계관 속 많은 단어와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 공간인 은하는 어두우면서도 밝은 우리의 세상 그 자체이다.
가사 해석
아무리 걸어도 밤은 끝이 안 보이고
여전히 사람들은 달이 어렵기만 해
나는 이제 아무것도 빼앗고 싶지 않아
'서울'과 ('마음만 먹으면 새까맣게 칠한 밤을 넘어서') '어려운 달'이 ('그대는 내겐 너무도 어려운 달') 떠오르는 가사로, 여전히 외로움은 커다랗고 소통의 어려움도 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1집), 소통을 갈망하다가도 도망치거나(2집), 온전한 이해를 주고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EP), 이어진 자기혐오를 이야기했는데(3집), 이제는 체념의 정서가 엿보이는 말을 꺼내놓는다.
바라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아
믿지 않으면 미움은 싹이 트지 않아
거리에 가득 차 있는 비겁한 가르침으로 날 걸어 잠그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가사이다. '바라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아, 믿지 않으면 미움은 싹이 트지 않아' 기대고 싶어지는 말이다. 늘 무언가를 바라왔고 누군가를 믿고 싶어 했던 과정에서 화자는 무기력함을 느꼈고, 보편적인 세상의 비겁한 가르침을 통해 가까운 관계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온 것 같다. 미움의 꽃이 피던 '도롱뇽'의 화자처럼 소통을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했던 때와는 다른 마음이다.
아주 먼 길을 돌아가다 누군가 울음을 참는 소릴 들을 때
잠시나마 혼자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하지만, 지금까지 물에서 헤엄쳐 나오면서 함께 몸부림치며 기어가자 외치기도 했고, 함께 외로움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물에 빠져가는 사람들의 희망도 보았다. 우린 함께 울지 못하던 가사처럼 '서울'이 우리네 모습이지만, 함께 울지는 못해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서로의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
이처럼 각자의 어려움이 있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에서 해소될 때가 있다. 치열하게 나아갔던 가사 속 화자처럼, 윤성현은 쏜애플이라는 밴드를 창구로 음악을 매개체 삼아 소통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본인이 쓴 곡을 선보이는 게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 막연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의미가 부여되고 삶이 되면서 절박함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자신의 곡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얻고 동참해 준다는 감각이 생겼다는 것. 여전히 자기 구원을 위해 음악을 해나가는 윤성현이지만, 천천히 쌓여온 함께 공명하는 마음은 큰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잠을 참고 기다리고 있어요 어디론가 데려가 줘요
나날이 저무는 나의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어요
그대가 흐르는 밤을
1집의 앨범 제목 중 '잠드는 법도 잊었네'는 잠들고 싶어 하는 화자의 마음,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행동이었는데, 이제는 잠, 즉 현실의 고통을 참아내며 그대를 기다리고 별이 흐르는 밤을 바라본다. '계몽' 앨범의 설명에서 이야기한 꿈의 끝에서 현실의 불완전한 희망을 그대와 함께 찾고자 한다.
아주 긴 노래를 부르다 오래전에 잊은 마음을 찾아낼 때
함께 시간을 녹여줘요 잠시나마 커다란 밤이 줄어들 것만 같아
1집의 노래를 처음 불렀던 마음, 2집의 치열하고 뜨거웠던 마음 등,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뭍에 오르기 전의 기억들은 긴 노래에 모두 담겨있다. 별들이 밤을 비추면 어둠이 줄어들듯이, 떠오르는 여러 감정을 나누며 자신의 넓고도 외로운 밤을 해소해 주기를 바란다.
아 그대 나의 별이 되어 날 이끌어 줘요
아 그대 나의 별이 되어 날 이끌어 줘요
'어려운 달'에서는 그대를 스스로 빛을 낼 수 없고 절대 닿을 수 없으면서도 끝없이 주변을 맴도는 달과 같은 존재로 표현했다. 하지만 '은하'에서는 스스로 빛나고 있어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는 보다 긍정적인 존재이자 희망이 되는 별으로 표현한다. 커다란 달은 보기가 쉽지만 별은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희미해서 보지 못했지만 주변에서 타인들도 빛나고 있었고, 태양이 삶의 의미를 비춰주며 희망을 갈망하게 했듯 별이 화자의 또 다른 희망이 되어 자신을 이끌어 주길 바라고 있다.
우리가 머무는 우주가 끝날 때까지
하나의 달과 그 주변의 수많은 별, 그 우주인 은하 속에서 살아가는 화자. 개인은 각자의 세계가 있기에 온전히 닿을 수 없고, 이에 따른 근원적인 고통과 허무를 이야기했다. 분명히 우리가 머무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타인에 관한 외로움과 두려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우주를 거부하지 않고 타인을 바라보고 세상을 마주해 본다. 모두가 온전히 닿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대로여도 세상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잠을 참고 기다리고 있어요 어디론가 데려가 줘요
나날이 저무는 나의 목소리여 그대에게 닿아라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며 여전히 노래를 부른다. 낯선 곳에 있는 우체통에 넣고 도망치거나, 탑에 올라가 멀게 뿌렸던 때와는 달리 명확한 '그대'에게 닿기를 바라며 언제 끝나버릴지 모를 노래를 전한다.
슬픔이 세상을 삼키기 전에 나와 함께 떨어져 줘요
나날이 저무는 나의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어요
그대가 쏟아지는 밤을
그대인 별이 쏟아지는 것은 곧 별이 비처럼 내리는 유성우일 것이다. 먼 얘기지만 '아가미'에서는 비가 화자를 고립되게 하는 요소였다면, 이제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나와 함께 떨어져 줘요'도 역시 별똥별로 생각이 드는데, 별똥별은 소원이나 희망을 뜻하기도 하지만 죽음을 뜻하기도 하고, 그 모든 것들을 함께해 주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소통을 어려워하던 화자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맬 때 누구도 위로가 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외로움 속에서도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맞닿음을 경험하고, 타인과의 소통이 희망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쏟아질 정도로 많은 희망이 눈앞에 보인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 와도 우리가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대담하고도 철없는 생각도 든다. 화자가 '마술'에서부터, 어쩌면 1집에서부터 찾아 헤매던 희망의 실체가 점점 드러난다.
이쯤에서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자. 하나의 불빛으로 시작하고, 그 불빛은 역시 윤성현이다. 터널은 로마네스크 뮤직비디오에서 이어진 터널로, 자신의 방 안에 갇혀있던 화자가 자신의 진심을 들고 걸어 나오던, 즉 내면세계에서 외부세계로 나아가는 터널에서 윤성현이 걸어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넓은 밤'에서 꽃을 따러 어두운 산에 오르려 했던 화자의 상황, 윤성현은 그 산에서 4개의 불빛을 발견한다. 윤성현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한 노래지만 이제는 옆에 4명의 멤버들이 함께 공명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에 위로를 주고받는 보이지 않던 수많은 불빛들 또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뭍에 올랐던 자신의 흔적을 만난 후 화자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 떠났지만, 물에 비친 불빛은 마치 옆에 누군가 있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음악이 어두운 밤 타오르는 하나의 불이 되듯, 사람들은 이 근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러한 순간들이 우리뿐만 아니라 윤성현과 쏜애플 멤버들에게도 위로가 되었다는 점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다음 EP에서 화두가 될 유한성에 대한 고민을 슬쩍 드러내기도 했고, 여전히 현실과 타인은 두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보는 곳에 희망이 있다면 끝이 있더라도 결국 계속 나아가게 될 것이고, 우리는 별처럼 서로 이끌어주고 이끌리며 끝을 향해서 나아갔으면 한다. :)
편곡
라이브에서는 윤성현이 기타로 인트로를 연주하며 시작한다. 사랑하는 부분은 '우리가 머무는 우주가 끝날 때까지' 다음의 빵요의 드럼스틱 치기!! 은하콘에서는 아아아~를 좀 더 길게 같이 떼창했던 편곡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들을 수는 없었다. 영상도 없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어쿠스틱 버전이자 넓은 밤 콘서트 때이다. 담담하고 씩씩하게 불렀던 은하라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영상으로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하는 영상이다.
개인적인 감상
'계몽' 앨범이 발매되기 전 18년도쯤, '사람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어떠한 종류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는 외롭고, 이를 공연을 하면서 잠깐이나마 해소한다.'라는 멘트를 지나, 전국투어 동물콘에서 윤성현이 이런 멘트를 했었다.'진짜 여러분들이 안 계시면 저희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 말을 하기까지 어언 13년이 걸렸네요. 저의 본위 자체는 저의 구원을 위해 하는 거지만 여러분들이 그것에 귀 기울여 주시면서 계속 이 무대를 할 수 있는 동력이 돼주시는 거잖아요.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철 좀 들어가지고~ 사춘기가 너무 길었나 봅니다.' 늘 음악과 가사로만 유추하며 느껴왔던 생각을 말로 들으니까 괜히 멋쩍기도 했지만 마음이 따뜻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지만 음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음악으로만 소통해온 쏜애플 멤버들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며 노래를 듣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 분석글을 적어나가기 시작했지만 여러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날이 가면 갈수록 느끼고, 그럴 때마다 이 곡이 생각난다. 쏜애플의 모든 곡 중에서 '은하'는 가장 따뜻한 곡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음악을 들은 우리의 몫이 조금이나마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맙고 행복할 뿐이당. 의미가 많이 큰 곡이라 오타쿠처럼 주절주절이 길었다. Life is 아름다운 갤럭시....
1줄 요약 : 외로운 우주 속에서도 타인과의 맞닿음을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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